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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eo Max Frank1884년 4월 17일 - 1915년 8월 17일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 연필 공장[1] 감독으로 일하던 중 1913년 4월 26일 13살 짜리 여공 메리 페이건(Mary Phagan)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필 살해 당한 날짜가 남부 연합군 전몰 용사 추도일[2]이었기 때문에 리오 프랭크는 흑인 청소부 단 한 명의 증언만으로 기소되었다. 프랭크는 남부인 텍사스주 출신이었지만 뉴욕에서 자랐기 때문에 북부인으로 비춰졌고, 게다가 집안이 부유한 유대인이었다. 사건 담당 지방검사는 휴 돌시(Hugh Dorsey)였다.
사건 구성 요소의 특수성 때문에 진실 규명은 뒷전이 되고 정치 문제로 비화되었다. 유명 사립탐정 윌리엄 J. 번즈[3]도 바로 뉴욕에서 애틀랜타로 내려와 사건을 조사하다가 사건 외부의 복잡성에 질려 손을 떼고 말았다.
프랭크의 가족들은 유능한 변호사인 한편 언론인, 정치인이기도 했던 타머스 E. 왓슨[4]에게 변론을 부탁해보기도 했는데, 백인우월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였던 왓슨은 이를 거절했으며, 자신의 정적이 프랭크에게 정당한 재판 기회가 주어져야한다고 주장하자마자 이를 강력히 규탄하며 선동해 프랭크에 대한 대중의 악의에 불을 지피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조지아 주지사 존 슬레이튼[5]은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자신에게 향후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면서도 6월 21일 리오 프랭크의 형을 사형선고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러자 메어리 페이건의 고향인 매리에터(Marietta)의 지역 유력인사들이 8월 17일 감옥에서 리오 프랭크를 납치해 나무에 매달아 살해했다.
조지아주는 1986년이 돼서야 리오 프랭크를 사후 사면했다.
2. 미디어 속 묘사
- 흑인 감독 아스커 미쇼우[6]는 해당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흑인 배우들로만 구성된 무성 영화 <The Gunsaulus Mystery>(1921)와 유성 영화 <Murder in Harlem>(1935)을 만든 바 있다. 둘 다 흑인 남성이 누명을 쓰지만 백인 남성이 진범으로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 1937년 머빈 러로이가 연출한 워너 브라더스 영화 <데이 원트 포겟(They Won't Forget)>이 개봉했다. 리오 프랭크에 해당되는 역은 공장 감독이 아니라 실업학교 교사 라버트 페리 헤일(Robert Perry Hale)로 나오며, 흑인 청소부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걸 두려워해 거짓 증언을 한 걸로 묘사된다. 클로드 레인스가 정계 진출에 대한 야심으로 무리해서 기소하는 지방검사 앤드루 J. 그리펀(Andrew J. Griffin) 역으로 등장했다. 메어리 페이건은 메어리 클레이(Mary Clay)로 성이 변경돼 나왔으며 라나 터너가 연기했다.
- 1988년 NBC에서 2부작 TV 미니시리즈 "The Murder of Mary Phagan"이 방영됐다. 래리 먹머트리 대본, 조지 스티븐스 주니어 제작. 피터 갤러거가 리오 프랭크를 연기했다.
주지사 잔 슬레이튼 역을 맡은 잭 레먼은 자니 카슨 쇼에서 자신이 일해본 중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했다고 극찬했는데, 주요 배우진 중엔 당시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들인 케빈 스페이시, 신시아 닉슨, 윌리엄 H. 메이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