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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과학자.2. 생애
1958년 9월 24일 출생으로 알려져 있다.전문 과학자 출신으로 보이며 과학원 부원장을 거쳐 1997년 6월, 국가과학원장에 임명되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홍성남 내각에서 과학원장에 임명,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8년 12월, 전문섭 장의위원,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0년 5월,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앙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2003년 4월, 조선로동당 과학교육부장에 임명되었다.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는 한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다만 과학원장 자리는 변영립에게 물려주었다.
2005년 10월, 연형묵 장의위원,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09년 2월,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정협주석 자칭린과 회담하기도 했다.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는 등 계속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6월 26일, 겨우 50세를 일기로 간암 때문에 급사하였다. 당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리광호는 당과 수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온 조선로동당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다. 그는 다년간 국가과학원 부원장, 원장으로 사업하면서 나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모든 지혜와 정력을 다 바치였으며 최근년간 당중앙위원회 과학교육부 부장의 중임을 지니고 당의 과학교육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며 강성대국건설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 그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세운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것이다."라고 그를 높이 말해주었으며 김정일이 화환도 보내주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 후임 과학교육부장으로 최희정이 임명되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0 북한의 주요인물(서울: 통일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