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로제 조제프 리오 (Roger Joseph Rio) |
출생 | 1913년 2월 13일 |
사망 | 1999년 4월 22일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됭케르크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75cm / 75kg |
등번호 | -[1] |
소속팀 | FC 루엥 (1931-1951) |
국가대표 | 18경기 / 4골 (1933-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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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축구선수.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리오는 1931년부터 FC 루엥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되던 당시 FC 루엥은 디비지옹 2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장 니콜라같은 뛰어난 공격수들을 보유한 팀이었다.리오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니콜라가 팀에서 빠졌음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며 지역 리그에서 계속 활약했고 지역 리그에서 우승은 맛보았지만 그 기록은 전부 비공식으로 처리되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디비지옹 1이 진행되었지만 루앙은 1947년 디비지옹 2로 강등당했다. 이후 리오는 루앙의 디비지옹 1 승격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리오가 은퇴할 때까지 승격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2.1.2. 국가대표
리오의 첫 국가대표팀 상대는 분더팀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였다. 오스트리아는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던 강팀이었는데 리오는 전반 26분에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졌다. 오스트리아는 후반 21분부터 6분 만에 프랑스의 골문에 3골을 집어넣었고 결국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를 4대0으로 대파했다. 리오의 데뷔전은 그렇게 씁쓸하게 끝났다.그 다음 상대는 1933년 3월 19일의 독일이었는데 리오는 이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마수걸이골을 쏘아올렸다. 하지만 리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독일과 3대3으로 비겼다.
리오는 이탈리아 월드컵에 프랑스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첫 경기에서 레프트 인사이드 포워드로 선발 출장했다. 하지만 상대는 또 다시 오스트리아. 프랑스는 선전했으나 연장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오스트리아에 2대3으로 패했고 리오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1937년 2월 21일의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리오는 주장 에드몽 델푸르가 빠진 상황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이것은 리오의 유일한 국가대표팀 주장 경력이었지만 프랑스는 벨기에에 1대3으로 패했다.
리오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37년 3월 21일의 독일전이었는데 프랑스는 독일에 4골을 얻어맞고 0대4로 대패했다.
리오는 총 18경기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해서 4골을 기록했고 이 18경기에서 프랑스는 6승 2무 10패로 전적상 신통치 못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리오는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서 도움과 득점 양쪽으로 팀의 공격에 힘이 될 수 있었다.4. 수상
4.1. 클럽[3]
- 디비지옹 2 우승 1회: 1935-36
- 디비지옹 도뇌르(노르망디) 우승 2회: 1931-32, 1932-33
5. 여담
- 로제 리오는 1978년 월드컵에 프랑스 대표팀의 수비수로 참가한 파트리스 리오의 아버지이다.
- 리오는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되었음에도 자신의 다른 직업에 만족해서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