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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4-18 21:11:00

레온 스구로스

이름 레온 스구로스
(영어: Leo Sgouros, 그리스어: Λέων Σγουρός)
출생 미상
사망 1208년
직위 나우플리아와 아르고스의 총독
반란 대상 알렉시오스 3세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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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 1201년 알렉시오스 3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중부 그리스를 거진반 장악하는 등 위세를 떨쳤으나, 라틴 제국의 공세로 몰락했다.

2. 생애

나우플리아와 아르고스 지역의 총독이었던 테오도로스 스구로스의 아들로, 1198년 부친으로부터 작위를 물려받은 뒤 동로마 제국 함대에 배를 제공하고 세금을 납부했다. 1201년 알렉시오스 3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기기로 마음먹고, 나우플리아에서 대주교와 유력 인사들을 연회에 초청한 뒤, 그들을 모조리 수감하고 대주교를 실명시켰다. 이후 보이오티아의 테베를 함락한 뒤 아테네 공략에 착수하여 아티카 일대를 황페화시키고 도시를 포위했지만, 아테네 시 주교인 미하일 호니아티스[1]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인해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알렉시오스 3세가 파견한 함대가 접근해오자, 그는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그 후 1203년까지 아티카 보이오티아, 코린트 지협을 포함한 여러 도시를 공략한 그는 1204년 다시 아테네를 침공했지만, 미하일 호니아티스가 이끄는 민병대에게 격퇴되었다. 1204년 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도망친 알렉시오스 3세와 라리사에서 만났고, 알렉시오스의 딸 에우도키아 앙겔리나와 결혼했다. 알렉시오스는 라틴 제국을 세운 십자군과 맞설 것을 종용했고, 그는 이에 따라 십자군 지도자이자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우려는 몬페라토 후작 보니파시오와 맞섰다. 그러나 그리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폭압적으로 대했기에 민심을 잃었고, 그 때문에 십자군에 맞설 병력과 물자를 모집하기 힘들었다.

그는 테르모필레에서 보니파시오를 저지하려 했다. 첫번째 공격은 격퇴했지만 두번째 공격은 끝내 뚫렸고, 미하일 호니아티스까지 보니파시오에게 가세했다. 결국 추종자 몇 명과 함께 아크로코린스 요새로 피신하여 항전하였다. 그는 4년간 몬페라 공작의 공격으로부터 요새를 지켰지만, 주변 일대가 모조리 공작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어디에서도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으로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창건자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에게 구원을 호소했지만, 미하일 1세는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1208년 말, 그는 절망에 빠져 말을 타고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아크로코린스 요새는 이후에도 항전했지만, 1210년 라틴군에게 함락당했다.


[1] 역사가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의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