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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15 15:14:17

소종(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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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소종(昭宗)
시호 신황제(神皇帝)
연호 꽝티에우(光紹, 1516 ~ 1522)
레(黎 / Lê / 여)
이(椅 / Y / 의)
생몰기간 1506년 ~ 1527년
재위기간 1516년 ~ 1522년

1. 개요2. 생애3. 가계
3.1. 조부모와 부모3.2. 후비3.3. 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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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월 후 레 왕조의 제11대 황제. 성종(聖宗)의 증손자로 아버지는 명종이다. 레 왕조의 황제들 중 제대로 된 황권을 행사한 마지막 황제로 소종 이후의 황제들은 급격히 힘을 잃어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묘호는 소종(昭宗).

2. 생애

장정왕(莊定王) 레숭과 찐티로안(鄭氏鸞) 사이에서 태어났다.

1516년, 폭군 레양익제찐주이산에게 시해된 후, 찐주이산은 레꽝찌를 옹립하고자 했다. 무좌후(武佐侯) 풍마이(馮邁)가 소종을 옹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자 찐주이산은 그를 살해한 뒤 계획대로 레꽝찌를 옹립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레꽝찌가 찐주이산의 형인 찐주이다이에게 납치되어 서도(西都) 청화(淸化)로 간 뒤 며칠 뒤에 시해되었다. 그런데 양익제가 시해되었다는 사실이 안화후(安和侯) 응우옌호앙주의 귀에 들어가자 응우옌호앙주는 병사를 일으켜 동도(東都) 탕롱을 공격했다. 찐주이산은 어쩔 수 없이 소종을 옹립하고, '꽝티에우'로 개원했다. 이후 찐주이산은 소종을 데리고 타인호아로 물러났다.

농민 봉기군의 수령인 쩐까오가 수도 탕롱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군사를 거느려 탕롱을 습격해 방어군을 격파하고, 쩐 왕조의 회복을 선포하며 '티엔응'(天應)으로 개원했다. 소종의 호소하에 찐주이산, 응우옌호앙주, 찐뚜이, 쩐쩐 등 각 로(路)의 제후들이 쩐까오의 난을 평정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응우옌호앙주와 찐뚜이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다툼으로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고, 마침내 쩐쩐이 응우옌호앙주를 쫓아내고 탕롱에서 조정의 정사를 장악했다.

쩐쩐의 권세가 매우 무거웠고, 이는 소종의 시기를 불러왔다. 1518년, 소종은 쩐쩐을 궁 안으로 유인한 뒤 암살했는데, 쩐쩐의 잔당은 이에 불만을 품고, 찐뚜이와 연합하여 병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차례로 레방, 레조(베트남)를 옹립했다. 소종은 어쩔 수 없이 가림현(嘉林縣) 보제진(菩提津)으로 피난했고, 막당중을 불러 어가를 구원하게 했다. 1519년, 막당중이 레조를 격파하고 죽였으며, 쩐쩐의 잔당을 자신의 편으로 흡수하니 막당중의 권세가 날로 커졌다. 이어 막당중은 수도 탕롱을 통제하고 조정의 정사를 장악했다.

막당중은 탕롱을 드나들면서 천자의 의장과 시위를 사용하니 소종은 이에 불만을 품었다. 막당중도 소종을 경계하여 딸로 하여금 입시(入侍)하게 하여 소종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했다. 1522년, 소종은 타인호아의 찐뚜이와 서신을 통하였고, 팜히엔(范獻), 팜트(范恕)와 함께 산서(山西) 명의현(明義縣)의 몽산(夢山)으로 달아나 제후들에게 막당중을 토벌할 것을 호소했다. 황태후 찐티로안과 소종의 동생 레쑤언은 따라가지 않고 탕롱에 남았다. 막당중은 마침내 소종이 간신에게 납치되어 수도 바깥에 있다고 선포하고 레쑤언을 옹립하니, 이가 공황이다.

소종이 도망갈 때만 해도 허다한 사람들의 지지가 있었지만, 환관 팜디엔(范田)의 참언을 듣고 신뢰한 것은 인심을 흩어지게 했다. 또한 소종은 찐뚜이의 부장 응우옌박끼(阮伯紀)를 죽였는데, 찐뚜이는 이에 불만을 품고 병사를 내어 소종을 납치하여 타인호아로 오게 했고, 소종은 찐뚜이의 괴뢰가 되었다.

막당중의 통제 아래 공황은 소종을 폐위하여 타양왕(陀陽王)으로 삼았다. 이후 막당중은 두 차례 공황을 데리고 찐뚜이를 공격했고, 마침내 1525년에 타인호아를 함락해 찐뚜이를 죽였다. 소종은 탕롱으로 압송 후 수감되었다.

막당중은 찐뚜이의 세력을 완전히 멸한 뒤 제위를 찬탈하고자 했다. 1527년, 막당중은 팜낌방(范金榜)을 시켜 소종을 시해하고, 청담현(淸潭縣, 현재 靑池縣)의 영흥릉(永興陵)에 장사지냈다. 묘호를 소종, 시호를 신황제(神皇帝)로 했다.

3. 가계

3.1. 조부모와 부모

3.2. 후비

3.3. 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