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라와드 왕조의 영토
1. 개요
쿠르드어 Rewadî아랍어 بنو روَّاد
영어 Rawadid
955 / 983 ~ 1071년에 걸쳐 남아제르바이잔 (현 이란 서북부)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쿠르드 왕조. 비록 아랍계이긴 하지만 쿠르드화된 라와드 부족이 세운 국가로, 비슷한 시기에 병존하던 마르완 왕조와 함께 첫 쿠르드 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도층만 쿠르드 인이었던 마르완 조와 달리 라와드 조는 휘하 백성 역시 쿠르드 인이 적지 않았기에 쿠르드 국가라 부르기 더 적합한 편이다. 다만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 문화에 속했다. 동로마 제국의 동진을 막던 라와드 조는 11세기 중반 튀르크멘을 앞세운 셀주크 제국에 복속했고, 1070년 결국 셀주크 제국에 병합되며 멸망했다.
2. 역사
몇 안되는 라와드 왕조 시기 유적인 타브리즈의 차르 메나르. 전성기 시절의 에미르 아부 만수르 바수단의 영묘이다.
왕가인 바누 라와드는 8세기 중엽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주한 아즈드계 아랍 부족으로, 압바스 왕조 초엽 타브리즈 태수직을 세습하며 세력을 확보하였다. 다만 9세기 들어 압바스 조와 틀어진 라와드 부족은 호람딘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결국 사즈 왕조에게 밀려났다. 산속에 은거하며 현지 쿠르드인들과 통혼한 결과, 그들과 동화된 라와드 족은 10세기 살라르 왕조에 복속하였다가 983년 살라르 조가 약화된 틈에 아제르바이잔을 석권하고 라와드 왕조를 세웠다. 라와드 왕조는 11세기 중반 아부 만수르 바수단의 치세에 정치, 문화적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셀주크 제국의 창건자 토그릴 1세의 숙부 아르슬란 이스라일을 따르다가 가즈니의 마흐무드에 의해 축출된 이라키야 튀르크멘이 1030년을 전후로 아제르바이잔에 이주하기 시작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초반에 바수단은 그들과 결혼 동맹을 맺고 아르메니아 왕국 및 동로마 제국에 맞서려 했으나 1039년 이라키야가 마라게를 약탈한 후에는 그 지도부를 초청해 학살하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이후로도 셀주크 제국의 박해를 피해 많은 이라키야 부족이 서진해왔으나 모두 격퇴되었다. 바수단은 간자를 방문, 공통의 적 앞에서 기존의 적국이던 샤다드 왕조와 화해하였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 1042-43년 타브리즈에서 수만이 사망하는 대지진이 발생하고, 1040년대 말엽 셀주크 제국 휘하의 튀르크멘이 타브리즈 일대를 초토화시키자 바수단은 1054년 친히 타브리즈를 방문한 셀주크 술탄 토그릴에게 복속하였다.[1] 1059년 바수단이 사망한 후 아들 아부 나스르 말만이 계승하였다. 하지만 1070년 그가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게 폐위되며 아제르바이잔은 셀주크 직할령이 되었다. 다만 1111년경 바수단의 손자 아흐마딜이 마라게의 총독에 올랐고, 1116년 사망한 후에는 노예 출신 장군 아크순쿠르가 계승하여 1225년까지 그 후손들이 아타베그 정권을 이어갔다.
[1] 이후 쿠트바에서 토그릴의 이름이 울려퍼지고, 바수단의 아들 아불 하이자 마누치르 (혹은 아부 나스르 말만)는 셀주크 궁정에 볼모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