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몬산 자락의 라샤야
라샤야 성채
1. 개요
아랍어 راشيا영어 Rashaya / Rachaya / Rashaiya
레바논 동남부의 도시. 라차야, 라샤이야로도 불린다. 나바티예에서 동북쪽으로 35km, 하스바야에서 동북쪽으로 20km 떨어진 산지에 위치한다. 베카주 산하 라샤야구의 중심 도시이자 베카 협곡과 와디 앗 타임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인구는 약 9천 명이고 드루즈교도 59%, 대부분 그리스 정교도인 기독교도 40%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135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선선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곡물과 함께 다양한 과일, 채소가 생산된다. 1943년에는 프랑스 당국이 가둔 레바논 독립 운동가들이 석방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2. 역사
1900년경의 라샤야
고대부터 요새가 있었고, 18세기 와디 앗 타임의 수니파 이슬람 (후일 일부가 마론파 기독교로 개종) 호족인 쉬하브 가문이 요새를 확장해 하스바야와 함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삼았다. 1860년 레바논 산악 내전 현지 쉬하브, 아르얀 가문은 기독교도 주민들을 보호했으나 아트라쉬 가문 등이 이끄는 드루즈 군대가 라샤야를 점령한 후 기독교도 남성들과 쉬하브 가문원 등 2백여 명을 학살했다.
1차 대전 후 프랑스령 레바논 시기 프랑스 군이 성채에 주둔했다. 대시리아 반란 중인 1925년 12월에 드루즈 호족 자이드 베이가 이끄는 3천의 봉기군이 라샤야를 공격, 기독교도 주택 420여 채를 불태우거나 파괴한 후 프라스 군이 주둔한 성채를 포위했다. 4일의 포위에도 성채는 함락되지 않았고 프랑스 군의 반격에 패배한 드루즈 군대는 시리아로 철수했다. 이는 반란의 기세가 꺾이는 전환점이었다.
1943년 11월, 막 레바논을 접수한 자유 프랑스 당국은 레바논 독립을 주장하던 지식인들을 대거 체포해 라샤야 성채에 수감했다. 후일 첫 대통령이 되는 베샤라 엘 쿠리, 총리가 되는 리아드 엘 솔흐, 카타이브당 (팔랑헤)를 창당하는 피에르 제마엘 등의 수감자들은 현지 여론의 반발과 국제 사회의 압박하에 11월 22일에 석방되었다. 그날은 레바논 독립 기념일일로 지정되었다.
레바논 내전기 라샤야는 초반에 PLO 연계 세력 하에 있다가 1976년 6월 시리아 군이 점령했고, 1982년 6월에는 이스라엘 군이 점령했다. 그러다 1985년 4월에 레바논 정부군이 수복했고, 이후로 안정이 회복되며 내전의 피해가 비교적 크지 않게 지나갔다.
3. 여담
드루즈 가문 중 알 아르얀 가문이 제일 유명하며, 현지 유지 가문으로 남아있다.라샤야에는 칼와 (드루즈 사원) 10여 개, 교회 4개 (그리스 정교,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시리아 가톨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