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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22:53:16

디파나가라 전쟁

1. 개요2. 배경3. 전개4. 의의5. 출처

1. 개요

Perang Diponegoro(디파나가라 전쟁)/De Java-oorlog(자바 전쟁)

1825년부터 1830년까지 욕야카르타디파나가라(디파느가라, 디포느고로)[1][2]을 중심으로 벌어진 인도네시아 토착 세력의 반 네덜란드 전쟁이다.

2. 배경

자바섬에는 이슬람 왕조인 마타람 술탄국이 있었고, 18세기 후반 욕야카르타 술탄국과 수라카르타 술탄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본디 자바섬의 세력들은 네덜란드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으로 네덜란드가 프랑스에 예속되고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가 네덜란드 왕이 되면서 자바섬은 자연스럽게 프랑스가 주재관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하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모든 해외 영토를 영국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프랑스에 엿을 먹이고자 했고, 영국이 자바섬을 두고 프랑스와 대립하여 승리하고 자바섬의 패권을 빼앗아왔으며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네덜란드 왕정이 복고되자 이를 다시 네덜란드에 반환하여 다시 네덜란드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돌아온 네덜란드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극 도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화의 일환으로 설탕, 후추, 커피 등 환금작물의 대량 재배를 시작했는데 자바섬의 관습적인 임대차 관습법을 무시하고 임차하면서 농민들과 군수(부파티, 지방 행정 구역 군을 다스리는 귀족)들의 반발이 거세진 것이다. 그 후 흉작과 화산폭발 등 자연마저도 네덜란드를 돕지 않으며 농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3. 전개

이를 보다 못한 디파나가라 공이 1825년 반란을 일으켰고 최고위 남계 왕족(pangeran, 공[3]) 29명 중 15명, 군수(부파티) 88명 중 41명이 동참하는 등 많은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하며 그 위세를 떨친다. 그러나 욕야카르타의 술탄과 대부분의 중앙 귀족들은 네덜란드를 지지했고 네덜란드와 욕야카르타 내부의 친네덜란드파의 연합전선과 디파나가라 세력은 5년간 치열하게 싸웠으나 결국 디파나가라 세력이 패배하고 만다. 이 전쟁으로 네덜란드 군은 1만 5천여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자바인은 최소 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네덜란드는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자바섬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자바섬을 기초로 인도네시아 군도에 대한 식민지 확장을 추진하게 된다.

디파나가라는 네덜란드군에게 붙잡힌 뒤 마카사르의 로테르담 요새로 유배를 갔고, 1855년에 죽을 때까지 네덜란드의 감시를 받았다.

4. 의의

디파나가라 전쟁은 중국에서 벌어진 태평천국운동이나 한국에서 벌어진 동학농민혁명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이는데 우선 종교를 기치로 내건 것과 반외세적 성격을 가졌다. 전쟁의 주도자인 디파나가라는 자바의 고전, 역사, 이슬람 교리에 심취하였고 이에 따라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이 주위에 몰려들었으며 자연스레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전쟁의 기치가 되었다. 이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종교인 배상제회가 기치가 된 태평천국운동, 동학을 기치에 건 동학농민혁명과의 유사점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네덜란드 식 경제개혁으로 삶이 피폐해진 농민과 지방 군수들이 전쟁에 동참했는데, 역시나 농민들이 주요 참여 세력이었다는 점도 태평천국 및 동학과 겹치며 그 상황에서 각국의 중앙 정부는 외세와 한편이 되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4]
디파나가라는 훗날 인도네시아가 독립하자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5. 출처

이상은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1] 표기가 여러 가지이며 모두 맞는 표기이다. '디파나가라'와 '디파느가라'는 자바어식, '디포느고로'는 자바어 현대 마타람 방언 음을 기준으로 한 인도네시아어식 표기이기 때문이다.[2] 디파나가라는 술탄 하믕쿠부워노 3세의 장남으로 왕자였지만, 전쟁이 벌어진 1825년에는 이미 부왕이 사망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여기서는 pangeran을 '공'으로 옮긴다.[3] 호칭이 아니라 작위로, 현임 술탄의 남자 자식이 성년이 되면서 '팡에란' 작위를 받았다. 이 작위는 술탄이 승하한 뒤에도 유지되었다. 또한, 왕의 손자, 증손자, 고위 왕족, 귀족(왕족이 아닌 경우는 매우 드묾) 중 술탄의 뜻에 따라 '팡에란' 작위를 줄 수 있었다.[4] 욕야카르타는 네덜란드와 연합했고, 청국 정부는 서방 열강인 영국, 프랑스, 미국과 연합했으며(이때 활약한 사람이 찰스 조지 고든이다.), 조선 정부는 청에게 지원을 청했고 그 과정에서 톈진 조약에 의거해 일본군까지 들어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