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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00:15:26

드와이트 무하마드 카위

파일:드와이트 무하마드 카위 프로필.jpg
드와이트 무하마드 카위
Dwight Muhammad Qawi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원명 드와이트 브랙스턴
Dwight Braxton
출생 1953년 1월 5일 ([age(1953-01-05)]세)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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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53전 41승(25KO) 11패(2KO) 1무
신장/리치 169cm[2] / 180cm
체급 라이트헤비, 크루저, 헤비급
스탠스 오소독스
링네임 Camden Buzzsaw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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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3. 커리어

1953년 1월 5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드와이트 브랙스턴은 뉴저지주 캠든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범죄에 연루된 생활을 하였다. 브랙스턴은 결국 무장 강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약 5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지만, 수감생활을 하면서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8년 출소한 브랙스턴은 아마추어 경력을 거치지 않고 25세의 나이에 곧바로 프로로 데뷔하였고, 프로 데뷔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후 1승 1패를 거두는 등 다른 선수들과 확연히 차이 나는 전적을 쌓았다. 당시 매튜 사드 무하마드가 가지고 있던 WBC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기 전까지 14연승을 거두었으며, 그중 KO승만 총 8번을 거두었다.

1981년 12월 19일, 첫 타이틀 도전에서 사드 무하마드를 10라운드 만에 제압하고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브랙스턴은 다음해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이름도 "드와이트 무하마드 카위"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카위는 사드 무하마드와의 재경기를 포함한 3번의 방어전에서 전부 TKO승을 거두었고, 다음 경기에서 WBA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마이클 스핑크스와의 통합 타이틀전이 예정되었다. 두 선수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이 대결은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카위는 스핑크스의 아웃복싱 전략에 크게 고전하였으며, 8라운드에 다운을 빼앗긴 했으나 경기의 판도를 뒤집을 만큼 효과적이진 못했다. 15라운드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카위는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며 스핑크스에게 타이틀을 내주게 되었다.

스핑크스에게 패배한 후 체중 감량에 부담을 느끼던 카위는 당시 새롭게 창설된 체급이었던 크루저급으로 월장하기로 결정한다.

1985년 7월 27일, 피엣 크라우스를 상대로 11라운드 KO승을 거두며 WBA 크루저급 타이틀까디 차지하며 크루저급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1986년 3월 22일,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레온 스핑크스를 6라운드 동안 압도적인 기량차로 짓밟으며 TKO승을 거두었다.

1986년 7월 12일, 당시 크루저급의 떠오르는 신예였던 에반더 홀리필드를 상대로 3차 방어전에 나섰다. 홀리필드가 스플릿 판정승을 거두며 카위는 타이틀을 또다시 잃고 말았다.

1987년 5월 15일, 오시 오카시오에게 논란의 판정패를 당하였다. 이에 IBF는 카위를 여전히 크루저급 랭킹 1위에 올렸고, 카위는 그 덕분에 홀리필드가 차지한 IBF 크루저급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카위는 1차전 때 접전을 펼친 것과 달리 4라운드 만에 커리어 첫 다운과 함께 첫 KO패를 당했다.

다음 경기에서 카위가 만난 상대는 10년 만에 복귀를 선언한 조지 포먼이었다. 경기 초반 카위는 오버핸드 양훅을 여러 차례 적중시키며 포먼을 고전시켰지만, 222파운드의 과체중이었던 카위는 점차 한계에 부딪혔다. 7라운드 카위는 경기 도중에 등을 돌리며 경기포기의사를 선언했는데, 이는 카위가 자신의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1989년 11월 27일, 공석이 된 WBA 타이틀을 놓고 로버트 대니얼스와 맞붙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의 나이가 된 카위에게서 예전의 기량을 보기 힘들어졌고, 대니얼스에게 스플릿 판정으로 패배했다.

이후 미래의 크루저급 챔피언들인 네이트 밀러와 아서 윌리엄스에게도 패배했으며, 45세의 나이에 토니 라로사에게 판정패를 당한 후 은퇴했다.

4. 파이팅 스타일

체급내에서 신체 조건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선수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상대에게 파고드는 인파이팅을 구사해야만 했고 이는 카위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싱을 할 때 하이가드를 올린 채로 전진 압박을 가했고 거리를 좁히고 나서 상대의 펀치들을 회피할 때는 필리쉘 가드를 사용했다. 위빙과 더킹을 할 때도 상대의 어퍼컷이나 아래 궤적에서 올라오는 훅을 블락하기 위해서 크로스 암 가드를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현역 시절 아치 무어를 연상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이외에도 조 프레이저처럼 키가 작은 압박형 파이터들이 대부분 그러듯이 토투토 상황에서 상대의 공격을 제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상대의 가슴팍 쪽으로 들이미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때 바디샷을 날리면 상대들은 반사적으로 팔을 내리게 되는데 그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된 안면을 향해 강펀치들을 날렸다. 카위의 상대들은 위 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잽을 열심히 날렸지만 오히려 카운터를 허용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기는 헤드 슬립으로 펀치가 닿기 전에 머리를 휙휙 돌려버리고 얼이 빠진 상대 앞에서 쇼보팅을 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5. 여담

형인 토니 브랙스턴도 프로 복싱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으며, 출전 체급은 카위와 달리 슈퍼 웰터급이었다.

2004년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 성장한 곳은 뉴저지주 캠든.[2] BoxRec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