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로마의 성(姓), 가명(家名)
드루수스(Drusus)는 고대 로마의 리비우스(Livii) 일족에 기원을 둔 가문 중 하나이다. 공화정 시대때 리비우스 일족에 속했던 드루수스를 시작으로 하는 가문으로 리비우스 일족 내 “첫번째 드루수스”가 일대일 전투에서 용맹한 적군 족장 드라우수스를 죽이고 얻은 존칭 “드루수스”가 그 시작이었다.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당시 이를 확고하게 반대했던 원로원 의원 대(大) 리비우스 드루수스와 그의 아들이자 동맹시 전쟁 당시 이탈리아 내 자유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개방하는 법안을 냈다가 암살당한 소(小) 리비우스 드루수스 그리고 소 리비우스 드루수스[1]의 양자로 들어간 대 리비우스 드루수스[2]의 외손자이며 소 카토와 혈연상 외사촌인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클라우디아누스가 이 가문 출신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소 카토의 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인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정으로도 유명하며,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인 리비아 드루실라의 차남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를 비롯해 아우구스투스의 일가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내 남성 황족들이 대대로 세습해 사용했다.
2. 고대 로마 시대 남성 이름
위에서 언급된 남성 개인 이름으로 리비우스 일족 중 드루수스 가문에서 기원을 둔 이름이다. 여성형 이름은 드루실라(Drusilla).리비우스 일족 내 남성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투스의 가족들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남성 황족들의 개인 이름으로도 많이 쓰였다.
일대일 전투로 용맹함을 증명한 상대방에 대한 경의, 이 이름을 얻게 된 첫번째 드루수스에 대한 존경심 외에도 아우구스투스와 그 남녀 황족들의 상징성을 보여준 개인이름이라서 쓰고 싶어도 황제의 직접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자기 아이에게 지어줄 수 없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와 그 직계 후계자들의 허락 외엔 다른 가문들이 쓰고 싶어도 마구잡이로 사용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당대부터 유명했다. 이런 비슷한 예로는 서기 2세기 말 세베루스 왕조에서 독점적으로 쓴 안토니누스, 서기 4세기 이래 로마 황제와 그 후계자들이 사용한 플라비우스가 있는데, 드루수스 역시 황실의 정통성 상징 같은 개인이름이었던 셈.
그래서 스크리보니우스 가문 내 리보 가문은 이 이름을 자랑스럽게 쓸 수 있는 특권을 보장받음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렇지만, 이는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 서거 직후 터진 티베리우스, 리비아 드루실라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고 리보 가문 출신의 루키우스 리보와 그 이란성 쌍둥이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스크리보니아누스가 그 주동자로 황제와 그 모후 외에도 주동자의 양부였던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까지 죽이려고 한 것이 드러나, 해당 가문이 큰 처벌을 받고 멸족 직전까지 갈 때 드루수스 이름 사용권도 영구금지됐다.
하여 서기 14년 이래, 다른 가문에선 그 이름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문을 닫은 뒤 사장된 이름이 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