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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3 20:41:32

도쿠히메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도쿠히메 徳姫
1559년 11월 11일 ~ 1636년 2월 16일

도쿠히메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녀이자 생모는 이코마 키츠노[1]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의 정실부인이다.

2. 생애

1567년에 9살의 나이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와 혼인하였고 1576년, 1577년에 두 딸을 낳았으나 아들을 낳지 못했다. 때문에 적자가 태어나지 않는 것을 걱정한 시어머니 쓰키야마도노가 노부야스에게 전 다케다 가 가신의 딸을 측실로 맞이하도록 하였고, 이 때부터 쓰키야마도노와 도쿠히메의 불화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2]

노부야스와도 불화가 있어 이에야스가 노부야스, 도쿠히메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오카자키(岡崎)에 방문하였다는 기록까지 있다. 그 즈음, 노부나가도 오카자키에 온 것이 기록되어 있어, 노부나가도 딸의 부부사이를 걱정해서 방문한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부부사이가 악화된 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1579년에 도쿠히메는 아버지 노부나가에게, 쓰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의 죄상을 호소하는 12개의 조항을 소장을 써서 보냈다. 이 것을 읽은 노부나가는, 아즈치 성에 방문하고 있던 이에야스의 가신 사카이 타다츠구를 통해 노부야스의 할복을 명했다. 쓰키야마도노는 8월 29일에 고야부 촌에서 살해되었고, 노부야스는 9월 15일에 후타마타 성에서 할복했다. 하지만, 이 12개 조항은 후에 가필,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진다. 사건의 발단이 된 도쿠히메 자신이 노부야스 건에 대해서 해명하기 위해 아즈치에 있는 노부나가를 만나러 가겠다고 이에야스에게 부탁하는 등 노부야스 할복 사건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고, 최근에는 이에야스와 노부야스의 대립이 원인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그 후, 도쿠히메는 1580년 두 딸을 남겨 둔채 오카자키 성을 나와, 아버지 노부나가가 아닌 오빠 오다 노부타다에게 돌아가게 된다. 1582년에 일어난 혼노지의 변에서는 아버지와 오빠를 잃게 되고 둘째 오빠인 오다 노부카츠에게 보호되지만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3] 시기에 인질로써 교토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1590년에는 노부카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영지를 이동하게 되면서,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오와리의 작은 절로 이동하여 살게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에는 오와리의 기요스 성 성주가 된 이에야스의 4남 마츠다이라 타다요시로부터 1,761석의 영토를 받게 된다. 그 후는 교토에 은거 생활을 하였다. 1636년에 생을 마쳤다.

3. 대중매체에서



[1] 이코마 키츠노가 아니라는 설도 존재한다.[2] 쓰키야마도노는 오다 노부나가와의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전사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친족이니 사이가 좋은게 이상하다.[3] 하시바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카츠 간의 전투.[4] 이후 전개는 역사와 아예 다른 내용인데, 역사대로 딸을 둘 낳고 그후로는 도쿠가와 가문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려고 하지만 이미 때가 늦고 결국 1579년이 된다. 오카자키 성을 떠나는 노부야스에게 인사를 하면서 스스로 '오카자키도노'로 살겠다고 한다. 드라마 자체가 주인공인 이에야스의 이미지를 일관된 선함으로 가져가다 보니 주변인들도 대부분 이렇게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