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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20:35:17

댄스 위드 더들리

1. 개요2.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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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아돌포 버뮤데즈 (Adolfo Bermudez)
생년월일
신장 180cm
체중 130kg
출생지 미국 오클라호마
별명
피니쉬 무브
커리어 AWF 태그 팀 챔피언 1회
WWC 캐리비안 헤비급 챔피언 1회
IWCCW 태그 팀 챔피언 2회
ECPW 태그 팀 챔피언 1회
1996년 PWI 500 싱글 레슬러 500대 선수 217위

1. 개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ECW에서 '댄스 위드 더들리'(D.W. 더들리로 약칭되기도 함)라는 링네임으로 더들리 가문의 일원으로 활약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 경력

버뮤데즈는 1992년 펜실베이니아에 본사를 둔 안젤로 사볼디의 인터내셔널 월드 클래스 챔피언십 레슬링 프로모션을 통해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화이트 클라우드'로 레슬링을 하는 버뮤데즈는 댄싱 울프(알 파라트)와 함께 '수 전쟁 파티'라는 태그 팀을 결성했다. 1992년 5월, 수족 전쟁 파티는 공석인 IWCCW 태그 팀 챔피언십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이 듀오는 1년 넘게 타이틀을 보유했지만 마침내 지미 데오와 LA에 패했다. 1993년 6월 고어는 같은 날 우승을 되찾았다. 1994년, 수 전쟁당은 IWCCW를 떠나면서 타이틀을 공석화했다.

잠시 AWF에 머물렀던 그는 화이트 울프와 함께 AWF 태그 팀 타이틀을 획득한 후 그해 초 ECW 하드코어 헤븐에서 부상을 당한 스노 더들리를 대신해 버뮤데스를 ECW에 출전시켰다.

버뮤데즈는 1995년 9월 17일 ECW 하드코어 TV 에피소드에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프로모션 익스트림 챔피언십 레슬링에 데뷔했다. 멜빵바지와 타이 다이 셔츠, 하이탑을 입은 버뮤데즈는 영화 '댄스 위드 울브스'의 패러디인 '댄스 위드 더들리'로 더들리 가문의 스테이블 멤버로 활동했다. 더들리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은 더들리 가문의 가부장인 빅 대디 더들리와 오클라호마 샤이엔 출신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의 자녀라고 한다.

댄스 위드 더들리는 부상당한 스노 더들리를 대신해 케이파비의 이복형인 더들리 더들리와 태그 팀을 구성했다. 더들리와 더들리 더들리가 함께한 댄스는 8월에 스타이너 브라더스와 공공의 적에게 패했지만 나중에 채드 오스틴과 돈 E.를 물리쳤다. 1995년 9월 16일 갠지스 파라다이스에서 열린 앨런은 단식 경기에서 J.T. 스미스와 핵 마이어스와 맞붙었다.

9월 23일 ECW 월드 태그 팀 챔피언인 더 피트 불스와 10월 6일 더 갱스터스에 패한 더들리 더들리는 싱글 커리어를 쌓기 위해 떠났고 부 부 레이 더들리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11월과 12월 초에 피트 불스, 퍼블릭 에너미어스, 엘리미네이터스에게 패했다. 12월 9일 더들리 더들리와 함께 디멤버로 재회하여 12월 9일 더 배드 크루를 물리친 그는 버버 레이 더들리와 함께 12월 28일에도 배드 크루를 물리쳤지만, 그 달 이틀 후 재대결에서 패했다.

1996년 초, 버뮤데즈는 ECW 대회 도중 다리 부상을 입었다. 1996년 4월 퀸즈 대로에서 열린 대학살에서 그는 더들리 브라더스의 경기를 위해 링사이드로 이동했고, 이 경기에서 디본 더들리가 데뷔전을 치르며 다른 더들리들의 코믹한 장난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1996년 6월 파이트 더 파워에서, 1996년 7월 폭염에서 디본 더들리가 다른 더들리 선수들을 공격해 의자 샷을 날렸다. 디본 더들리의 공격 이후 버뮤데즈와 다른 더들리 대원들은 배신자 디본 더들리와 불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와 통통 더들리는 곧 프로모션을 떠났고, 프로모터 폴 헤이먼과 분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댄스 위드 더들리는 빅 재팬 프로레슬링을 통해 일본을 순회했다. 불 페인, 이안 로튼 등 다른 미국인들과 팀을 이뤄 요시아키 야츠, 사부 등의 레슬러와 맞붙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그는 프로레슬링 일러스트레이티드에 등장하는 라라자 역의 여러 태그 파트너와 레슬링했다. 그는 스페인 천사, 키드 USA, 루시퍼, 호미사이드, 로우 라이프 루이 등의 직원들과 여러 차례 경기를 치렀다. 그는 프로모터 바비 롬바르디로부터 큰 피드백을 받았지만 롱아일랜드 레슬링 연맹이 롱아일랜드에서 더 동쪽으로 공연을 하자 자리를 떠났다.

2000년대 중반, 댄스 위드 더들리는 "수석 더들리"라는 링네임을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