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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2:02:45

그란 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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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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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콜롬비아의 영토
1819년 12월 17일 ~ 1831년 11월 19일
성립 이전 해체 이후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 누에바그라나다 공화국
베네수엘라국
에콰도르
수도 보고타
정치 체제 연방 대통령제
국가 원수 대통령
주요 대통령 시몬 볼리바르
도밍고 카이세도
호아킨 모스케라
라파엘 우르다네타
언어 스페인어
종교 로마 가톨릭
통화 피아스트라
주요 사건 [ 펼치기 · 접기 ]
1819년 12월 17일 건국
1821년 8월 쿠쿠타 헌법
1828-1829년 콜롬비아-페루 전쟁
1831년 해체

1. 개요2. 역사
2.1. 독립 직전2.2. 독립 전쟁2.3. 해체
3. 기타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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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19년부터 1831년까지 존속한 남아메리카의 옛 나라. 현재의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의 영토의 해당되며, 가이아나, 브라질의 영토도 일부 포함한다.

2. 역사

2.1. 독립 직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은 16세기부터 300여년 동안 에스파냐의 식민지였고, 그란 콜롬비아 지역은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이었다. 에스파냐 식민지에서는 본토 출신인 페닌술라르가 고위직을 독점했으며, 식민지 개척자 및 정복자의 후손인 크리오요는 식민지에서는 상류층이었으나 페닌술라르만큼 출세하지는 못해서 불만을 품다가 미국 독립 전쟁을 계기로 각성한다. 한 술 더 떠서 19세기 이후 유럽의 인구 증가와 농토 부족, 저임금 중노동에 지친 스페인 본토의 빈농, 빈민들이 남미 각지의 식민지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현지 귀족이었던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온 빈농들이 자신보다 더 공식 계급이 높다는 점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에스파냐 본국이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리면서 식민지에 신경쓰지 못하자 누에바 그라나다[1]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에스파냐 식민지들은 독립을 준비하게 된다.

2.2. 독립 전쟁

누에바 그라나다에서 처음 독립운동의 삽을 든 사람은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안드레스 베요, 시몬 볼리바르였다. 베네수엘라는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한창이던 1811년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왕당파의 반격에 무너지면서 미란다는 스페인에 끌려가 옥사하고 베요는 영국으로 망명하며, 볼리바르는 누에바 그라나다에 남아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독립군이 불리해서 일방적으로 패전하기도 했으나, 볼리바르는 아이티에서 병력을 빌려오고 야노스[2] 군벌인 호세 안토니오 파에스와 동맹을 맺으며 야네로라 불리는 목동들을 기병으로 편입시켰다. 병력의 양과 질을 개선한 시몬 볼리바르는 다른 크리오요들의 지지의 힘입어 콜롬비아스페인군을 몰아내며 그란 콜롬비아를 세웠다.

그 후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를 해방시켜 그란 콜롬비아에 편입했고[3] 리오데라플라타칠레에서 스페인을 몰아낸 다른 해방자인 호세 데 산 마르틴과 과야킬에서 만나 단독회담을 열었다. 볼리바르는 미국을 본받아 남아메리카 국가가 단일 공화국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산 마르틴은 입헌군주제 국가를 주장해서 회담은 흐지부지된다. 이후 볼리바르는 산 마르틴이 정리하지 못한[4] 페루와 알토페루를 안토니오 수크레 장군을 보내서 해방시켰다. 두 나라는 그란 콜롬비아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알토페루는 볼리바르와 수크레를 기념해서 국호를 볼리비아로 정했고 사법 수도에도 수크레란 이름을 붙였다. 비슷한 시기에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도 독립하면서 에스파냐는 중남미 본토에서 밀려났다.

출범 당시에는 매우 강력한 국가였다. 당시 페루와 볼리비아는 그란 콜롬비아의 동맹국이었고,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 리코 독립세력에서는 그란 콜롬비아 가입을 타진해오기도 했다. 당시 인구가 250만이었는데[5] 멕시코 제1제국이 650만, 브라질이 470만, 아르헨티나가 75만, 칠레가 90만에 미국 정도나 인구가 1000만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존 퀸시 애덤스는 그란 콜롬비아를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아마 미국 독립에 빗대어 한 얘기였겠지만, 당시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이 자멸해 멕시코 제1제국에 흡수되고, 그런 멕시코는 파산해버리는 추태를 보고 한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대단히 성공한 강대국인 브라질 제국은 군주제 국가였기에 미국에서 치켜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2.3. 해체

하지만 그란 콜롬비아의 앞날은 밝지 않았다. 볼리바르는 그란 콜롬비아 구성국마다 부통령을 한 명씩 임명하고 자신은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볼리바르의 협력자였던 파에스는 베네수엘라 부통령을 맡은 뒤 반란을 일으켰다가 사면받았다. 볼리바르의 측근이었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는 콜롬비아 부통령이었지만 파에스 사면 및 기타 정책 문제로 볼리바르와 대립하다가 볼리바르 암살 미수사건을 일으켜 추방당했다.[6] 여기에 그란 콜롬비아를 포함한 중남미 독립국의 인종격차와 빈부격차 문제도 겹쳤다.

결국 볼리바르는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자 1830년에 대통령을 사임한 직후 산타마르타에서 사망했고, 1831년에 그란 콜롬비아도 해체되면서 구성국들은 고만고만한 소국으로 갈라졌다.

3. 기타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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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베네수엘라 독립 전쟁 · 누에바그라나다 독립 전투 · 보야카 전투
사상 볼리바르주의
장소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
기타 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 · 그란 콜롬비아 · 노예해방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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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파나마.[2] 베네수엘라 남부 초원지대.[3] 파나마는 이 때 콜롬비아 영토였다.[4] 페루를 공격할 때 본국 정부에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결국 프랑스로 망명했다.[5] 현대까지 그란 콜롬비아가 남아있었다면 인구가 1억이었을 것이다.[6] 파에스는 그란 콜롬비아가 해체되자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되었고, 산탄데르는 볼리바르 사후에 귀국해서 콜롬비아 대통령이 된다.[7] 결정판 기준. 구판에선 프랑스/러시아/오스만에서 볼리바르를 지도자로 선택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