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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21:21:09

다울라트 샤

1. 개요2. 생애

1. 개요

원나라의 재상.

2. 생애

다울라트 샤(倒剌沙)는 진왕(晉王) 이순테무르(훗날의 태정제)의 내사(內史)를 지내며 총애를 받았다. 그 아들 하산은 테그시, 에센테무르 등과 영종 시해(남파의 변)에 가담했다. 영종 시해에 가담한 인물들은 이순테무르 즉위 이후 차례로 관작을 받았으며 다울라트 샤는 중서평장정사로 임명된다. 1323년 겨울, 다른 '공신'들이 역적으로 몰려 살해당하는 가운데 다울라트 샤는 역적을 토벌한 공으로 금은과 교초를 상으로 받고 중서좌승상으로 승진했다. 아들 하산 또한 주살된 역적의 목록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 아버지를 따라 살아남았을 것이다. 1235년 어사중승으로 임명됐다가 다시 중서좌승상이 됐고 개부의동삼사 녹군국중사가 더해졌다. 1328년 타스테무르와 함께 몽골인과 색목인도 한족의 법을 본받아 부모 상중(丁憂)인 자의 이름을 (관적에서) 빼버릴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에 태정제가 상도에서 죽자 황태자를 옹립하고 연호를 '천순'이라고 했다. 엘테무르 등이 대도에서 투그테무르를 옹립하자 다울라트 샤는 양왕(梁王) 왕선(王禪), 좌승상 답실첩목아(答失鐵木兒), 어사중승 뉴택(紐澤), 태위 부카(不花) 등을 보내 대도의 반란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엘테무르와 그 동생, 아들에 의해 여러 번 패배했다. 제왕(齊王) 월로첩목아(月魯帖木兒), 원수 불화첩목아(不花帖木兒)가 상도를 포위했고 결국 다울라트 샤는 황제의 도장을 받들고 나와 항복했으며 처형됐다.

1329년에는 다울라트 샤를 종처럼 섬겼던(奴事) 평장 탑즉길(塔即吉), 진왕 이순테무르의 부민 출신으로 다울라트 샤에게 딸을 시집보낸 호광행성좌승 마모(馬謀, 마흐모드?) 등이 어사대의 탄핵으로 조정에서 쫓겨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