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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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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의경 싸가: '노병가'
2.1. 가사
3. 민중가요: '늙은 노동자의 노래'
3.1. 가사
4. 여담

1. 개요

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원곡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하여 부르는 노래들.

원곡의 가사가 워낙 의미심장하다보니 여러 곳에서 '늙은 XX의 노래', 혹은 한자 번역인 '노병가'로 개사해서 부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래의 전경의경 버전 개사곡 '노병가'[1]민중가요 버전 개사곡 '늙은 노동자의 노래'가 있다.

2. 전의경 싸가: '노병가'

의경 출신이 재현한 버전
시위나 파업 집회 등의 상황으로 모인 시위대와 이를 통제하기 위해 배치된 전경의경들 사이에서 불리는 싸가.

구전되는 노래인 만큼 가사도 전경과 의경, 부대마다 조금씩 다르며 노래 제목도 노병가, 의경가, 짜박가, 의경블루스 등으로 통일되어있지 않다. 2009년경 시위진압 문제로 시끄러웠던 당시 현역 의경이 만든 노래인 '新 노병가'도 이 노래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보통 구보를 할 때 부르면 음정없이 악을 쓰면서 부르곤 하였으며, 전역을 축하할 때 부를 때는 '늙은 군인의 노래' 음정과 비슷하게 불렀다고 한다.

한때 전국의 많은 전경의경 중대에서 2014년 경까지 부르곤 하였지만, 2015년 이후로 점차 의경 공식 군가도 잊혀지는 가운데 노병가도 그 시절의 의미가 많이 약화되어 사실상 의경 부대에서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다른 의경 군가는 전의경 카페 등을 통해서 녹음본을 찾을 수 있지만, 이 노병가는 공식 군가보다 많이 불려진 편임에도 녹음본을 찾기 어려운 것은 덤.[2]

노병가 가사들과 역사에 대해 다루어진 글 한 블로거의 조사에 의하면 80년대에도 전의경 복무를 한 이들에게도 노병가가 불렸다고 한다. 여기에 구보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실제 '늙은 군인의 노래' 음정과 비슷하게 부른 것을 보면 시위대가 부른 노래를 전의경들이 개사해서 지은 듯 하다. 80년대에 이 노래를 만든 전의경이라면 2019년 기준으로 60대 이상이 된다. 만든 사람은 이 노래가 이렇게 퍼질 것을 알고 있을까....

2.1. 가사

나 태어나 이 강산에 의경[3]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nn개월[4]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5]
데모 막다 돌 맞아서 병가 가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방석복[6]에 실려간 좆같은 군대생활[7][8]

3. 민중가요: '늙은 노동자의 노래'

문예선동과의 결합
보다시피, 늙은 군인의 노래에서 군인노동자로, 푸른 옷작업복으로 바꾸고 3절까지만 부르면 거의 같다. 참 쉽죠? 꽃다지에서 부른 버전도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노동조합 역사 초창기에는, 민중가요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집회현장에서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군복무 시절에 지겹게 불렀던 군가를 그냥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노조원들이 시위 현장에서 멸공의 횃불을 부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일부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군복무 시절 부르던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가사만 바꾸어서 불렀고, 이것이 널리 전파되어 민중가요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9]

3.1. 가사

나 태어난 이 강산에 노동자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작업복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노동자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노동자의 아들이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작업복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작업복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4. 여담

위 두 노래 모두 같은 노래를 가사만 조금 바꿔서 부르는 것이다 보니, 시위 현장에서 같은 노래를 다른 버전으로 부르게 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원곡 작사/작곡가인 김민기손석희와의 JTBC 뉴스룸 인터뷰[10]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980년의 광주에서 계엄군이 진군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바로 이어서 시민군 측이 투사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의경은 진압 중엔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다, 전경의경이 모두 폐지되어 직원기동대로 대체되었기에, 경찰관이 일부러 찾아서 부르지 않는 이상 더는 전해질 일이 없게 되었다.


[1] 제목이 '늙은 의경의 노래'가 아니라 노병가인 이유는… 늙은 의경은 없기 때문이란다. 전역을 하기 때문.[2] 위 녹음본도 직접 노병가를 부른 적이 있는 전의경 출신들을 통해 수소문하여 복원한 노래이다. 버전이 여러 개인 만큼 개인이나 중대, 시대마다 가사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경이 노병가면 전경은 짜박가, 예전에는 24개월 이상이지만 지금은 18개월 등등.[3] 전경들은 전경이라고 한다.[4] 원곡처럼 '꽃 피고 눈 내리기'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짜박짜박 연행술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개월수는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며 계속 바뀌어 왔다. 길게는 30개월부터, 26개월이었던 적도 있고, 2021년에는 18개월.[5] 무엇을 배웠느냐, 무엇을 하였느냐로 부르는 부대도 있다.[6] 진압복, 들것 등으로 바꿔 부르는 중대도 있다.[7] 노래에 욕설이 들어가는 것을 안좋게 보는 간부들이 있기 때문에, 꽃같은, 꿈같은 등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도 많다.[8] 특히 구보할 때 부르면 '좆같은 군대생활' 부분에 강한 악센트를 넣음으로써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악과 깡을 다시금 북돋워주는 군가다. 한번더!를 외치면 '좆같은 군대생활' 이 부분을 반복한다.[9]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인터뷰[10] 2018년 9월 13일, 23분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