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1년 6월 1일 |
가해자 | 디펜드라 (당시 왕세자) |
사망자 | 9명[1] |
부상자 | 5명 |
유형 | 존속살인, 쿠데타, 무차별 학살, 총기난사 |
결과 | 비렌드라 (10대) 국왕 사망 디펜드라 (11대) 명목상 즉위 및 사망 갸넨드라(12대)의 왕위 계승 2008년 네팔의 군주제 폐지에 영향을 줌. |
1. 개요
네팔 왕실 학살은 디펜드라의 난, 왕실정변, 왕실 쿠데타라고도 하며, 2001년 네팔 왕국에서 비렌드라 당시 국왕과 일가족이 디펜드라 왕세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말한다. 1768년부터 200년 넘게 이어져 왔던 네팔 왕정 통치가 종식되는 기폭제가 된 사건이다.네팔은 왕조 240주년이 되는 해인 2008년에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개헌했다.[2]
2. 사건 경과
2001년 6월 1일 네팔 현지시각 저녁 9시(한국시간 6월 2일 0시 45분)경 네팔의 나라얀히티 왕궁에서는 연회가 열렸다.[3] 이때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슈와라 왕비 등 왕실 가족들이 대거 참석하였고, 디펜드라 왕세자는 컨디션을 이유로 연회장에서 나갔다. 왕족들은 계속 대화했고, 연회장은 화기애애할 줄 알았다.그러나 곧 디펜드라 왕세자는 문을 걸어 잠가서 경호원들과 왕실 경비병들의 출입을 막고, 군복을 입고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채 총을 천장에 쏜 뒤, 아버지 비렌드라 국왕을 총으로 쏘았다. 이어서 슈르티 공주, 숙부 디렌드라 등 일가족을 총으로 쏴 죽이고 왕궁을 나가려다가, 어머니 아이슈와라 왕비와 동생 나라잔 왕자가 디펜드라를 붙잡자, 이들 둘도 총으로 쏴 죽이고는 소리를 지르면서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쏘아 자살 기도를 했다. 경호원들과 왕실 경비병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땐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였는데, 그들은 사건 현장을 보고 모두 경악했다. 이 사건으로 가해자인 디펜드라를 포함하여 남자 5명, 여자 5명 등 10명이 사망하고, 남자 2명, 여자 3명 등 5명이 부상을 당했다.
특히 디펜드라는 사흘이 지난 2001년 6월 4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의식불명 상태였던 디펜드라는 왕위를 자동 승계했다가 56시간 뒤 사망했고, 다음 왕위는 숙부 갸넨드라에게 넘어갔다. 이 사건은 네팔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비렌드라 왕과 왕족들[4]의 장례식에 수많은 네팔 국민들이 참여하여 크게 슬퍼했다.
의외로 이 난리를 벌인 주범인 디펜드라의 장례식도 정상적으로 치러졌는데, 시신의 얼굴 반이 날아가 버린 상태라서 굉장히 흉측한 터라, 시신에 도기로 만든 데스마스크를 씌운 채 진행했다.[5]
2.1. 사망자
- 비렌드라(55) - 네팔의 국왕 (아버지)
- 아이슈와라 왕비(51) - 비렌드라 국왕의 아내 (어머니)
- 슈르티 공주(24) - 비렌드라의 딸 (여동생)
- 나라잔 왕자(22) - 비렌드라의 아들 (남동생)
- 샤라다 샤흐(59) - 비렌드라의 누나 (둘째고모)
- 쿠마르 카드가 - 비렌드라의 매형, 샤라다 샤흐의 남편 (둘째고모부)
- 샨티 싱흐(60) - 비렌드라의 누나 (첫째고모)
- 디렌드라(51) - 비렌드라의 남동생 (숙부)
- 자얀티 공주(54) - 비렌드라의 사촌 (당고모)
- 디펜드라 - 비렌드라의 아들 (이 사건의 범인)
2.2. 부상자
- 코말(당시 50세) - 비렌드라의 남동생 갸렌드라의 아내 (숙모)
- 쿠마르 고라크 - 슈르티 공주의 남편 (매제)
- 케타키 체스터 - 비렌드라의 사촌 (당고모)
- 파라스 왕자 - 디펜드라의 사촌
- 쇼바 공주(당시 52세) - 비렌드라의 여동생 (막내고모)
3. 의혹?
비렌드라의 남동생이자 디펜드라의 숙부 갸넨드라가 사건 당일 포카라에 출장을 떠난 상태여서 무사했는데, 이를 두고 갸넨드라가 사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며, 여동생 슈르티 공주의 남편이 디펜드라가 데브야니 라나를 좋아하는 줄 알아서 입막음을 하려고 슈르티를 해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갸넨드라는 형 비렌드라와 나쁜 관계가 아니었고, 형과 형수, 남동생, 누나, 조카 슈르티 공주와 나라잔 왕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패륜을 저지른 조카 디펜드라를 왕실 호적에서 삭제한 데다, 결정적으로 갸넨드라의 부인이자 디펜드라의 숙모인 코말 역시 연회에 참석했다가 참극에 휘말려 중상을 입어 죽을 뻔했기 때문에 사실무근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인도와 미국에서 사주한 것이라는 의혹도 있긴 한데, 이건 마오이스트 반군 계열에서나 나오는 얘기로, 갸넨드라 배후설보다 더 신빙성 없다고 취급받는다.참극이 벌어진 사연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돌지만, 왕가에서 왕세자의 결혼에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게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다만, 왕가에서 이 결혼을 왜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데브야니가 속한 라나 가문은 과거의 일로 인해 왕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6] 국왕 부부가 반대했다고 하는 설이 있는가 하면, 힌두교 신자인 왕비가 점성술사에게 디펜드라가 35살 이전에 결혼하면 반드시 왕족이 몰살된다는 점괘를 듣고 결혼을 반대했다는 설도 있다.
4. 여담
2019년 5월 25일 대한민국의 예능 프로그램 차트를 달리는 남자 세계왕실의 막장 라이프 랭킹 1위에 올랐다.이 사건으로 네팔 정세가 최악으로 심각해지면서 대학 등 고등교육 기관이 기능을 거의 정지해 버렸고,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된 대학생들은 대부분 인도, 중국 등 해외로 유학을 나갔다고 한다. 비정상회담의 수잔 샤키야도 원래 네팔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나, 이 사건의 여파로 한국으로 유학 왔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왕과 서커스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1] 범인인 디펜드라 포함 시 10명.[2] 이 사건으로 인해 곧바로 폐지된 건 아니고, 이 사건 이후 왕위계승자가 모두 사망하고 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즉위했는데 국회를 해산하는 등 폭정을 하다가, 들고 일어난 국민들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왕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해 폐지되었다.[3] 당시 네팔 왕실에서 왕족들의 친목 도모와 왕실에 대한 홍보를 목적으로 매달 1번 하는 연회가 있었다. 문제는 친목 도모를 위한 장소에서 가족 간 불신 폭발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회장에는 국왕과 왕족들만 있었고, 경호원들과 경비병들은 모두 문 밖에서 경비를 섰다.[4]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슈와라 왕비, 비렌드라와 아이슈와라의 자녀들이자 디펜드라의 동생들인 슈르티 공주와 나라잔 왕자, 비렌드라의 누나인 샨티 공주와 샤라다 공주, 막내 남동생인 디렌드라 왕자 등 총 7명.[5] 어머니 아이슈와라 왕비도 머리가 심하게 손상되어서 데스마스크를 씌우고 장례를 치렀다.[6] 요약하자면, 라나 가문이 네팔 왕실을 바지사장으로 두고 100년 넘게 실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상세 내용은 라젠드라(네팔) 및 트리부반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