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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03:06:09

세르게이 네차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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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2222,#000000><colcolor=#ffffff,#dddddd> 세르게이 네차예프
Сергей Нечаев | Sergey Nechayev
파일:225px-Nechayev.png
본명 세르게이 겐나디예비치 네차예프
Серге́й Генна́диевич Неча́ев
출생 1847년 10월 2일
러시아 제국 블라디미르 현 이바노보
사망 1882년 11월 21일 (향년 35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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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 활동2.2. 혁명운동과 살인2.3. 몰락
3. 사상: 혁명가의 교리문답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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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제국허무주의자, 아나키스트, 혁명가. 아나키스트 중에서도 특히 극단적이고 과격한 방법론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 생애

2.1. 초기 활동

세르게이 네차예프는 1847년 러시아 이바노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공장에서 노동일을 했고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온다. 거기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의 강의들을 청강하면서 여러 급진적인 사상들을 접했고 곧 학생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당시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 미수로 인하여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지만 그는 학생들을 끌어모아 혁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혁명을 준비하면서 여러 음모권모술수를 동원하기 시작했다.[1]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명성은 학생들 사이에서 점차 올라갔다.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러시아를 떠나 스위스 제네바로 갔는데 거기에는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러시아인 망명가들이 있었다. 네차예프는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자신을 투사로 포장했으며 몇몇을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다.[2]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본 망명가들은 후원금도 마련해주었고, 혁명가들과의 접촉도 주선해줬다. 네차예프는 이런 지원에 힘입어 '세계혁명동맹'이라는 가상단체를 만들어 자신이 그 단체의 '러시아 지부 비밀 대표'임을 바쿠닌으로부터 인정받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그는 "바쿠닌의 후계자"라 자처하며 러시아로 돌아왔다.

2.2. 혁명운동과 살인

당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미하일 바쿠닌의 지원은 러시아에서 네차예프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를 철석같이 믿었고 혁명운동을 함께 하고자 했다. 1869년 네차예프는 모스크바에서 동지들을 끌어모아 '인민의 복수'라는 조직을 결성한다. 조직원들은 네차예프의 「혁명가의 교리문답」을 따를 것을 다짐했고, 이듬해인 1870년대 전국적인 봉기를 일으키기로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조직원 중 하나였던 이반 이바노프라는 사람이 네차예프의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직에서 나가려고 한 것이었다. 이에 1869년 11월 네차예프는 동료 4명과 공모해서,목을 조르고 총을 쏜 뒤 연못에 던져버리는 방식으로 이바노프를 살해했다.

하지만 완전범죄는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네차예프의 공모자들 중 한 사람의 집을 수색하던 중 네차예프와 그의 조직에 관련된 자료들을 발견하였다. 또한 이바노프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공모자들을 체포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건은 러시아 혁명운동계에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혁명운동에 있어서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반혁명세력은 혁명세력을 공격할 때 이 사건을 단골소재로 들이밀며 혁명세력의 도덕성을 공격하였다.[3]

2.3. 몰락

살인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네차예프는 일단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마당에 그를 옹호해주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그를 응원했던 미하일 바쿠닌조차도 의심을 감추지 못하고 끝내 결별했다.[4] 다른 망명가들과 혁명가들도 점차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 네차예프는 그렇게 혼자가 되어 2년을 타국에서 보내야 했다. 1872년, 그는 한 밀고자에 의해 스위스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러시아로 이송됐다.

1873년, 러시아에서 네차예프는 징역 20년에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것이 종신형으로 대체되면서 1874년 상크페테르부르크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갇혔다. 그는 여기서도 혁명운동을 벌여서 간수까지 포섭하여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외부의 혁명조직과의 접선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도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네차예프는 투옥 8년만인 1882년에 35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3. 사상: 혁명가의 교리문답

「혁명가의 교리문답(Катехизис революционера, Catechism of a Revolutionary)」은 네차예프가 작성한 혁명가를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다. 총 26개조로 구성된 이 글은 혁명가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직설적이고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몇몇 조항들은 상당히 비인간적인 권모술수 같은 느낌마저도 준다.
스스로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① 혁명가는 죄인이다. 그에게는 사적 이해도, 개인적인 일도, 사사로운 감정이나 집착도, 사유재산도, 심지어 이름조차 없다. 그는 모든 관심과 생각과 열정을 혁명에 바쳐야 한다.
② 혁명가는 공적 질서나 문명사회, 그리고 모든 법과 관습과 일상적인 삶의 조건과 도덕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며, 이를 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는 문명사회의 무자비한 적이다. 그가 이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사회를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③ 혁명가는 모든 교조주의를 경멸해야 한다. 그는 평화를 위한 과학을 포기하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한다. 그가 아는 과학이라고는 파괴를 위한 것뿐이다. 기계공학, 물리학, 의학을 공부하고, 밤낮으로 인간, 인간의 특성과 상황, 인간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계급의 사회질서를 연구하는 것도 모두 파괴를 위해서이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이 비열한 질서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④ 혁명가는 여론을 경멸해야 한다. 그는 기성의 도덕에 숨어 있는 모든 의도와 그것을 드러내는 모든 방식을 경멸하고 증오한다. 그는 혁명의 승리에 기여하는 도덕만을 인정하며, 그의 시각에서 혁명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부도덕하다.
⑤ 혁명가는 죄인이다. 그는 국가와 사회를 대표하는 모든 것에 대해 냉혹해져야 하며, 그가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민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와 혁명가 사이에 화해란 가능하지 않다. 오로지 갈등만이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끊이지 않고 일어날 뿐이다. 둘중 어느 한 쪽의 죽음만이 둘 사이의 갈등을 끝낼 수 있다. 혁명가는 매일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는 견뎌낼 수 있을 때까지 고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⑥ 혁명가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그는 가족애, 우정, 사랑, 감사, 명예와 같이 나약한 감정을 혁명가다운 냉철한 열정 하나로 억눌러야 한다. 그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나 위안은 혁명의 성공에서 온다. 그는 언제나 가치없는 파괴라는 단 한 가지의 생각과 목표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목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를 하고 또 방해가 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없애버릴 수 있어야 한다.
⑦ 진정한 혁명가라면 낭만, 감수성, 격한 감정, 충동, 심지어는 사적인 증오심과 원한까지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 열정이 그가 가진 제2의 본성이긴 하지만, 그것은 가장 냉철한 계산에 의거한 것이어야 한다. 그는 개인적인 관심사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가 아니라 혁명의 이해에 부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언제 어디에서나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동지들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① 혁명가는 자신처럼 투철한 혁명적 활동을 보여주는 자만을 아끼고 친구로 삼을 수 있다. 우정과 헌신을 비롯해서 동지들에 대한 다른 의무가 갖는 비중은 그것들이 파괴적 혁명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② 혁명가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혁명 행동의 모든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 저마다 혁명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혁명가 동지들은 가능한 한 모든 중요한 사항을 다같이 토론하고 모두의 의견을 따르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만큼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파괴 행동에 힘해야 하며,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다른 동지들의 조언이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③ 모든 동지는 제 2·3의 계층에 속하는, 즉 비공식적으로만 혁명단의 일원인 혁명가들을 가까이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는 그들을 자신에게 할당된 혁명 자금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이 자금은 경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혁명가는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혁명가 자신 역시 혁명의 대의를 이루기 위한 자금으로 이용되어야 하는데, 단 이 자금의 사용은 모든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거친 것이어야 한다.
④ 한 동지가 불행에 처해 있고 그를 도울 것인가 말 것이가를 결정해야 할 때, 혁명가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혁명의 대의에 이익이 되는 것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때 혁명가는 한편으로 그 동지가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지, 다른 한편으로 그 동지를 돕기 위해서는 다른 혁명가들이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사회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①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고자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자신의 열의를 행동이 아닌 말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는 만큼, 조직 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투표를 실시하여 만장일치가 이루어졌을 때에만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② 혁명가는 오직 완전하고도 신속한 파괴라는 목적 하에서만 국가, 계급, 그리고 소위 문명화된 사회 내에 침투해야 한다. 그는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세계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과의 상황과 관계가 계속 그를 주저하게 만든다면(그 세계의 모든 것이 그에게 가증스러운 것이어야 할진대), 그는 진정한 혁명가라고 볼 수 없다. 그 세계 내의 부모, 친구,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관계들 때문에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면, 그는 진정한 혁명가라고 할 수 없다.
③ 혁명가는 가차없는 파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회 한 가운데서 살면서 현실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을 찾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혁명가는 상점, 교회, 고급 호텔, 관료 사회, 군대 뿐 아니라 문단, 참모본부, 심지어 겨울궁전까지, 모든 곳에, 모든 계급내에 침투해야 한다.
④ 이 모든 비열한 사회는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즉시 사형선고를 받는다. 우리는 혁명의 대의 완수를 저해한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등급을 매긴 명단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일순위를 차지한 첫 번째 부류는 가장 먼제 제거될 것이다.
⑤ 명단을 작성할 때 개개인의 과오나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게 민중들이 품게 된 증오심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오나 증오심이 민중의 봉기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잠정적으로 유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혁명의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죽음을 불사하는 한이 있다 해도 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혁명가 조직에 해가 되는 자라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의 돌연하고도 비참한 죽음은 정부를 엄청난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지식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물러나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정부의 권력에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⑥ 두 번째 부류에서는 잠시나마 우리의 피땀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들의 무자비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민중의 봉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⑦ 세 번째 부류는 폭정을 행사한 상당수의 고위직 인사들로, 이들은 타고난 조건으로 부, 인맥, 영향력, 권력 등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설자리를 빼앗고, 무릎을 꿂게 하고, 노예로 만들어야 하고, 또 그들의 하찮은 비밀을 폭로해야 한다. 그들의 영향력과 인맥, 그리고 그들이 가진 부와 힘은 혁명가 조직에 있어서 귀한 보물이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⑧ 네 번째 부류는 야심을 품은 정치가들과 모든 종류의 자유주의자를 포함한다. 이들과 결탁하여 이들의 계획에 공모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는 이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을 굴복시키고, 이들의 비밀을 알아내고, 결정적으로 이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들을 통해 국가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⑨ 다섯 번째 부류에는 정치적인 모임이나 저작들을 통해 장광설에 여념이 없는 이론가, 음모자, 그리고 혁명가들을 포함한다. 이들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길들이고, 단호하고도 위험한 선언을 하게끔 부추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 다수에게는 결정적인 실패를, 혁명가들에게는 교육적인 효과를 안겨주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⑩ 여섯 번째 부류는 여성이다. 이 부류는 아주 중요하며, 세 가지의 하위 부류는 나뉜다. 하나는 연약하고, 어리석고, 영혼이 없는 여성들로 이들은 세 번째와 네 번째 부류의 남성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지만 우리와 한 편이 될 수는 없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념을 구상하지 못하며, 또 혁명의 대의를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 여성들은 다섯 번째 부류의 남성들과 같이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강령을 전적으로 따르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편이요, 우리 혁명단의 정식 회원이요, 우리의 동지이다. 우리는 그들을 아주 소중한 보물처럼 대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 없이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중에 대한 혁명단의 자세
① 혁명단은 민중, 즉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과 행복 외에 그 어떤 다른 목표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행복과 해방이 모든 걸림돌을 일소해버릴 민중 혁명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하며, 이를 위해 모든 힘과 모든 자원을 바칠 것이다. 혁명단은 민중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총궐기를 할 수 있도록 부추기기 위해서 민중에게 가해진 고통을 배가시키고 확산시키는 일까지도 불사할 수 있다.
② 혁명단이 이해하는 '민중 혁명'은 서구 사상만을 따르거나 사유재산·전통·사회질서 혹은 일반적으로 문명이나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들 앞에서 주저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운동은 이제껏 기존의 정치체제를 전복하는 데 그쳤고, 이는 단지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혁명적이라 불리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민중은 국가를 그 근본부터 파괴하고 러시아의 모든 전통과 계급과 기성 질서까지 제거할 혁명만을 환영할 것이다.
③ 게다가 혁명단은 민중에게 상부의 하달에 따르는 조직을 강요할 의향이 전혀 없다. 미래의 조직은 분명 민중의 운동과 삶 그 자체로 구성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우리의 과제는 끔찍하고, 가차없고, 완전하고, 총체적인 파괴이다.
④ 또한 민중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민중들의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 민중은 모스크바 정부가 설립된 이래로 귀족, 관리, 기업가, 상인 등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모든 이에 맞서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항거했다. 이 용감무쌍한 무법자들과 함께 하자.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러시아의 혁명가들이다.
⑤ 민중을 저지할 수 없고 파멸적인 하나의 힘으로 통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조직의 과제요, 우리의 음모요, 우리의 목표가 될 것이다.

4. 여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으로는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이라는 평전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아나키즘무신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혁명가들의 행태가 바로 네차예프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한편 네차예프의 행동들을 기원으로 하여 '네차옙시나(Нечаевщина, Nechayevschina)'라는 용어가 생겼다. 이것은 '네차예프의 만행'이라는 뜻으로 혁명을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말한다.

[1] 예를 들어서 그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요구가 담긴 서명을 요구했고 서명을 받은 후에는 이것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해서 서명자들을 시위에 끌어들였다. 또한 자신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잡혀가 수감된 적이 있었다며 자신의 투쟁 전력을 조작하기도 했다.[2] 물론 그에게 부정적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알렉산드르 게르첸이라는 사회주의자였다.[3] 혁명과 해방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는 이후 다양한 창작물에서 클리셰처럼 작용하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창작물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진보와 혁명을 '도덕의 덫'에 몰아넣는 것이라는 반론 또한 존재한다. 이 기사의 경우에는 혁명세력에게 지독하게 요구되는 도덕성이 반혁명세력에게는 제대로 요구되지는 않는다는 점, 혁명 세력은 오히려 도덕의 틀을 깨야 한다는 점, 대중에게 부도덕한 혁명세력이 부도덕한 반혁명세력보다 더욱 큰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점(보다는 위선이 더 나쁘게 인식된다는 점) 등을 네차예프의 사례를 통해 지적하며 '도덕의 덫'에 일방적으로 갇히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4]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네차예프가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서 꽤나 전전긍긍했다. 이미 네차예프는 바쿠닌이 자본론의 러시아어판 번역료를 당겨쓴 적이 있다는 것을 이용해 출판담당자에게 "돈 받을 생각 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이것이 발각되어 바쿠닌을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