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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1-21 09:41:54

남궁현(독립운동가)

성명 남궁현(南宮炫)
본관 함열 남궁씨
생몰 1901년 4월 18일 ~ 1940년 4월 25일
출생지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사망지 목포형무소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궁현은 1901년 4월 18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에서 태어났다. 전주신흥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전주읍내 남문 밖 장터에서 학생 및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고, 1919년 8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공산주의에 경도된 그는 1927년 3월 조선청년총동맹 영광청년회에 가입했고, 그해 10월에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해 식민지 노예정책에 항거했다. 그러다가 또다치 체포된 그는 1931년 1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정판갑(鄭判甲)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위한 생계지원을 해주기 위한 석수어(石首魚) 건조사업을 계획했다.

그러다가 또다시 체포된 그는 1934년 7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1934년 11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출소 후 육군에 복무했지만 군대 내에서 사병들에게 독립사상을 전파했고, 결국 1939년에 또다시 체포되어 1939년 10월 31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육군형법 위반 혐의로 금고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가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그는 1940년 4월 25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남궁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0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