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나찬홍(羅燦洪) |
생몰 | 1872년 10월 12일 ~ ? |
출생지 |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 석교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나찬홍은 1872년 10월 12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활동하다가 1919년 3월 2일 교구장 안봉하(安鳳河)로부터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수안군 천도교 관계자들을 소집해 교구에서 회의를 열고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했다. 한청일과 홍석정은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었고, 대천, 오동, 연암, 공포면의 교인들과 동지들에게 따로 연락해 3월 3일 읍내에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그러나 이 계획은 수안헌병분대에 탄로났고, 나찬홍을 비롯한 천도교 주요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를 면한 한청일, 홍석정 등은 3월 3일에 나의집 등과 함께 계획을 그대로 추진해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나찬홍은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그의 생애와 사망년도 및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나찬홍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