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놓은 밤처럼 잘생긴 얼굴, 등뼈 대신 대나무를 꽂아 넣은 듯 꼿꼿한 자세. 깨끗하게 빨아 풀을 먹여 다린 새하얀 도포 차림에 고고한 학이 날아가는 듯한 걸음걸이. 오직 정도만을 걷는 선비의 기개와 기품. 거기다 고작 약관의 나이에 생원시와 진사시를 모두 장원으로 통과하기까지. 조선 팔도를 다 뒤져도 이만한 사내는 없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가문의 명망 뿐.
자기가 잘난 걸 남영도 너무 잘 안다. “군계일학” 풀어서 “나 빼고 모두 닭” 어쩌랴. 학이 닭장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법. 당당히 조정에 출사표를 내고 한양으로 상경했다. 그런데, 야심차게 시작한 한양살이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무법천지다. 표낭꾼에, 무뢰배에, 도둑놈에... 심지어 세 들어 살게 된 집주인 여자가 밀주꾼이라니! 그리고 그 밀주꾼에게 술을 사 마시는 놈팽이가 훗날 모시게 될 왕세자라니! 가장 얽히지 말아야 할 인간들과 얽혀버리는 바람에 남영 앞에 깔려있던 꽃길이 진탕길이 된다.
때때로 가슴이 이상한 박자로 뛰는 것은 저 막돼먹은 여인을 향한 참을 수 없는 분노 때문일 것이다. 필시 그럴 것이다.
입신양명을 위해 한양에 상경한, 능력 출중 사헌부 감찰. “깎아 놓은 밤처럼 잘생긴 얼굴,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세, 고고한 학이 날아가는 듯한 걸음걸이”의 소유자다. 칼이 목에 들어와도 지조와 절개를 지킬 인물이자, 걸어 다니는 사서삼경으로 남에게는 물론 자신에겐 더 엄격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남영은 야심 차게 시작한 한양살이 중 예측불허한 인물 강로서를 만나 대혼란에 빠진다.
베 짜고 바느질하는 재주가 있었다면 로서의 팔자도 달라졌을까. 아니, 십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로서도 평범하게 시집가서 어느 평범한 사내의 평범한 아내가 되었을까. 하지만 그런 평범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로서는 제 밥벌이를 스스로 해야 하는 날품팔이 아씨가 되었다.
오랜 시간 노동으로 단련되어 웬만한 사내만큼 힘이 좋다. 사람들은 계집이 힘쓰는 일 한다고 손가락질하고, 양반이 체면도 모른다고 수군대지만 로서는 그냥 못 들은 척 한다. 우리 오라비가 과거급제만 해봐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게 팔자니까 언젠가 또 뒤집어질 거다. 죽으라고 밟으면 더 머리를 꿋꿋하게 내민다.
그런 로서도 백 냥 빚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도끼질을 수천 번 해도, 날품팔이를 수천 일 해도 갚을 길이 없다. 거기서 로서는 주저앉기보다 조금 위험한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쌀로 술을 빚으면 금이 되는 세상, 술을 빚으면 백 냥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뒷방에 세 들어 온 깐깐한 선비가 사헌부 감찰이라니! 딱 백 냥만 벌고 끝낼 일이었건만 일이 자꾸만 커진다. 이게 다 저 감찰 때문이다.
금주령의 시대, 백 냥 빚을 갚기 위해 술을 빚기 시작하는 가난한 양반 처자. 귀티나는 외모와 달리 돈 되는 일이라면 힘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양반이 체면도 모른다는 수군거림을 뒤로한 채, 유일한 희망인 오라비 뒷바라지하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현란한 무예실력... 책만 가까이했다면 모자랄 것 없는 왕재였겠지만 실상은 대학연의를 5년째 끝내지 못하고 있는 날라리 세자.
처음부터 세자가 될 운명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의 후궁이었으니까. 그러나 십년 전 적통이었던 성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표의 운명도 바뀌었다. “경빈이 자기 아들을 왕세자 자리에 앉히기 위해 세자를 독살했대.” 어머니에 대한 무성한 소문도 싫고, 형님의 죽음으로 얻게 된 세자 자리는 더욱더 싫다. 그런 이표에게 술은 시름을 잊게 해주는 약이요, 긴긴밤을 함께 해주고, 고된 생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술 없이는 잠을 이루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금주령 시대에 술 좋아하는 세자. 나라의 골칫거리다.
[추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로서를 만났다. 밤거리를 뛰어다니며 술을 파는 대담한 여인. 언제부턴가 술 한 잔보다 그녀가 더 생각난다. 자꾸 생각나니, 욕심이 나고, 곁에 두고 싶어진다. 로서와 함께라면 더 이상 술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금주령의 시대, 반항미를 장착한 왕세자. “어딜 가든 세상을 밝히는 얼굴”의 소유자로, 처음부터 세자가 될 운명은 아니었으나 현재로선 유일한 왕자로서 왕위 계승 1순위이다. 다 가진 세자 이표의 유일한 벗은 다름 아닌 술. 금주령이 내려진 시대, 몰래 궐을 빠져나가 밀주방을 드나드는 탓에 나라의 골칫덩이로 꼽힌다.
귀한 가문의 귀한 딸로 태어나 귀한 것을 입고 귀한 것을 먹으며 자랐다. 딸 바보인 아버지 덕분에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져봤고 하기 싫은 건 다 안 하고 살았다. 안되는 게 있어도 아버지에게 떼쓰면 어떻게든 됐다.
하지만 그런 애진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규문 안에서 태어나 규문 안에서 늙어 죽어야 하는 여인의 운명. 금강산에 가는 것이 소원이지만 여인은 금강산에 갈 수 없단다. 규방 안에 귀한 것들이 가득한데 금강산에 갈 수 없는 애진은 그 모든 게 참으로 부질없다. 그 헛헛함을 애진은 몰래 도둑질하는 것으로 푼다. 그 나쁜 짜릿함이 애진에게는 성취감이다.
이왕이면 잘생긴 낭군에게 시집가고 싶다. 금강산을 못 볼 바에야 잘생긴 낭군님 얼굴이나 보며 살게.
[추가] 그런 어느 날, 정체불명의 도령 하나가 애진의 가슴에 새로운 불꽃을 당긴다. 그 도령과 혼인하기 위해서라면 애진은 못할 일이 없다. 그게 설사 도둑질보다 더 위험한 일일지라도.
명문가의 무남독녀이자, '조선판 직진녀'. 어화둥둥 귀하게 자란 애진은 하기 싫은 건 죽어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을 가졌다. 혼기 꽉 찬 나이, 평생 보고 살 낭군님 얼굴이 이왕이면 잘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들어온 사람에게 직진하는 통통 튀는 매력의 소유자다.
---- 종친 능산군의 가마 앞에서 “물렀거라”를 외치던 관노, 구사(丘史)였다. 쯧쯧, 하필이면 노비로 태어났을꼬. 양반으로 태어났으면 큰일을 했을 것인데. 그의 비범함과 총명함을 아는 이들은 모두 혀를 찼다. 하늘이 그의 재주를 아까워했던 탓일까. 주인이었던 능산군의 역모를 고변하면서 시흠의 비천한 신분은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공신으로 책봉되었고,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문과에 급제했다. 기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수리였던 그의 여동생이 승은상궁이 되어 왕자 이표를 생산한 것이다. 신분의 한계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자신의 능력과 운으로 도승지(정3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공신들에게 치여 화병으로 괴로워하는 임금과 반쪽짜리 세자라고 멸시 받는 이표를 지키기 위해 그는 스스로 날카로운 가위가 되기로 했다. 임금 보다 한 발 앞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충신이자 책략가로서 모든 그늘을 잘라낼 것이다.
노비로 태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는 도승지까지 오른 능력자. 10화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내면서 이 작품의 최종 보스로 등극했다
---- 신중하고, 묵직하게 움직이는 노회한 대신. 삼십년 전, 지금의 임금을 직접 용상에 앉히고 공신이 되었다. 이십대의 젊은 임금이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 없는 어려운 신하. 그게 바로 조문이었다. 어린 손녀를 계비의 자리에 앉히고 명실상부 조선 최고의 세도가가 되었지만 괘씸하게도 임금이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공신 가문들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수리 출신의 후궁이 낳은 이표가 세자가 되고 관노 출신의 이시흠이 도승지가 되면서 나라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다. 조선을 지키기 위해 내 손으로 내 군주를 갈아치웠건만 이제 내 나라를 저 천것들에게 내어달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30년 전 지금의 임금을 직접 용상에 앉힌 공신으로, 임금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려운 신하다. 그러나 점차 권력을 키워온 이시흠 때문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 넉살 좋고, 힘도 좋고, 입맛도 좋다. 나기는 노비로 태어났어도 자존감만큼은 양반이다. 제 상전인 남영에게는 꼬박꼬박 말대꾸하면서도 로서에게는 처음부터 지고 들어간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누가 실세인지를. 혼기 꽉 찬 노총각으로 짝을 만나 장가가는 것이 소원.
---- 신분은 다르지만 로서에게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벗. 관노로 태어나 글자를 안다는 이유로 의녀로 차출되었다. 뒷돈 받고 진료 순서 바꿔주기, 좋은 약재 빼돌려서 팔아먹기 등으로 자잘하게 용돈벌이를 한다. 좋게 얘기하면 생활력이 뛰어나고, 나쁘게 말하면 도덕관념이 좀 부실하다. 밀주방에서 몰래 술 마시던 모습을 로서에게 들키는 바람에 로서의 위험한 밀주장사에 휘말리게 된다.
혜민서 수련의녀. 로서와 함께 밀주를 제조한다. 우연한 계기로 로서와 함께 술을 빚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로서를 서포트하며 아이디어 뱅크의 활약을 톡톡히 해내는 인물.
---- 망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과거공부 중. 자신의 뒷바라지로 고생하는 로서를 위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낙방이다. 셈할 줄 모르고 정만 많아서 장사를 했다간 밑천을 빼서 내어줄 타입. 동생 로서보다 더 철없어 보이는 오라비지만, 로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조선 제일이다.
---- 한양에서 큰 주가를 운영했던 박씨 부인. 금주령으로 망한 뒤 도망치듯 한양을 떠나 강 건너 새말마을에 정착했다. 갈 곳 잃은 사람들이 새말로 모여들었고, 박씨는 술을 빚어 그들을 먹여 살렸다. 어느새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자연스레 대모라 불리게 되었다. 어느 날 한양에 술을 팔러 간 아들 강산이 돌아오지 않자 강산을 찾으러 막산과 함께 한양에 올라왔다.
---- 삼십년 전, 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 앉았다. 그 후 오랫동안 조정을 손아귀에 쥔 공신들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힘없는 임금이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첫째 아들 이결이 뛰어난 왕재였기 때문이다. 젊고 야심만만한 세자는 공신들에게 진 빚이 없으니 자신의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성현세자가 급사하면서 희망의 불씨도 사그라들었다. 그때 절망한 임금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시흠이었다. 뒤를 이어 세자가 된 표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공신을 견제할 수 있는 책략을 꾸며줄 수 있는 충신. 그러나 조정은 이미 공신들의 사람들로 가득하고 표는 임금의 기대와는 달리 자꾸만 엇나간다. 속에서 들끓는 화가 그의 몸을 병들게 한다.
---- 원래는 궐에서 물 긷던 무수리였다. 오라비 이시흠이 면천되어 관직을 얻고, 뒤이어 임금의 승은을 입고 왕자 이표를 낳았다. 십년 전, 성현세자가 급사하면서 세자의 어미가 되고, 후궁 중 으뜸이라는 빈의 칭호까지 받았지만, 성현세자를 독살했을 거라는 소문은 경빈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오랜 궐 생활에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경솔한 언행 때문에 궐 안에서 무시당하기 일쑤.
---- 서강에서 큰 여객을 운영하는 여객주인. 실상은, 한양 최대의 밀주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밀주업자다. 어렸을 때는 기린각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던 처지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의 과거를 입에 담지 않는다. 기린각의 운심을 빼고는.
십년이나 계속되는 금주령의 세상은 그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막대한 부를 벌 수 있는 황금의 땅, 그게 바로 지금의 한양이다. 한양에서 거래되는 술을 독점하기 위해 심헌은 고위 관료들을 매수한다. 심헌에게 뒷돈을 받은 관리들은 한양 최대의 밀주업자는 봐주면서도, 거리에서 탁주 몇 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매섭게 처벌하는 이율배반을 행해야 한다. 관리들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가 직접 칼을 들고 나선다. 짧은 단도로 순식간에 근거리로 파고들어 베어버리는 심헌의 검술은 보면서도 믿겨지지 않는 수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자라면 서슴없이 죽이는 냉혈한이다. 헌데 어떤 겁 없는 계집이 술을 팔고 다닌단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한양 최대 밀주조직을 운영하는 밀주업자. 금주령 시대 그의 허락 없이는 술을 빚어도 팔아도 안 되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이십대 같은 미색. 그저 웃음만 팔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절개. 상대방의 혼을 쏙 빼놓는 매력적인 화술. 십년 간 지속되어 온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기린각을 한양 최고의 기방으로 키워낸 경영능력. 그러나 운심을 조선 최고의 기녀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운심의 검무야말로 모든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운심의 검무가 없는 연회는 연회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
한양의 술을 독점한 심헌과는 어쩔 수 없이 술을 거래하고 있지만 술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고 있다. 이따위 술을 기린각에서 팔라고? 평소에는 여유로운 운심도 심헌을 만나기만 하면 바짝바짝 날을 세운다. 지난 십년간 아무도 몰래 지켜온 비밀이 그녀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운심 자신도 모른다.
---- 성격도 더럽고 하는 짓도 더러운 거리의 무뢰배. 한때 한양 거리를 주름잡던 왈자패 두령이었으나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난 심헌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꼬랑지 내리고 심헌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내심 불만을 품고 있지만, 심헌 덕분에 밀주방으로 톡톡하게 이득을 보고 있음으로 나름 동업관계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주 종목은 시장바닥에서 자릿세 뜯기, 그리고 투전판과 밀주방 관리. 마음에 안 드는 양반 계집 하나 혼쭐 내주려다가 말 그대로 팔자가 뒤집어진다.
---- 연조문의 손녀. 할아버지의 정치적 야욕 때문에 십여 년 전, 열여섯의 나이에 임금의 계비로 간택되었다. 임금도, 후궁들도, 심지어 세자도 그녀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타고난 위엄과 품위가 있다. 조용히 중궁전이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뒤에서 모든 것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다. 언젠가 그녀가 나서야 할 때가 올 것이다.
---- 애진의 아버지로 세상 둘도 없는 딸 바보다. 삼십년 전 반정 때 선친이 궐문을 열어준 공으로 공신가문이 되었다. 하지만 대대로 무신 가문이었던 탓일까. 같은 공신가문인데도 은근한 차별이 있다. 그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군사의 수 때문이다. 낙천적이고 편견이 없는 데다 눈치도 없다. 재산도 많고 귀엽고 예쁜 딸도 있는데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 정치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