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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23:17:11

김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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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亨珉
(1956~)
1. 개요2. 기자경력
2.1. MBC 시절2.2. SBS 시절
3. 사건사고4. 근황

1. 개요

1956년생 前 MBC, SBS 기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남동생은 쇼핑호스트 김형진이다. 2012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SBS를 떠났다.

2. 기자경력

2.1. MBC 시절

군 전역 후, 복학시기를 놓쳐 용돈이라도 벌어볼까 광화문을 지나가다 경향신문 기자시험 공고를 보고 원서를 받을 생각이었다 마감되어 돌어서려는 순간 문화방송 기자 원서를 배부하고 있다는 말에 지원했고[1] 1984년에 문화방송에 기자로 입사했다. 그의 입사동기로 김상운, 황헌[2], 박수택[3], 송기원, 송재우[4], 김기성[5], 최금락[6], 정규관, 김성수, 김상철, 이장석, 홍예원, 임흥식, 신창섭, 손관승, 최창영, 정경수, 김석진[7], 박광온[8], 전영배[9], 홍수선, 김철호, 문철호, 윤영욱, 임태성 등이 있다. 아나운서로는 박미숙, 김창옥, 변창립, 한광섭, 손석희, 이창섭, 이규리, 이미영 등이 있었다.

입사 후 정치부와 국제부, 베를린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1991년 입사동기인 박수택, 최금락, 김기성, 정규관, 이창섭 등과 함께 SBS로 이직했다.

2.2. SBS 시절

1991년에 SBS가 개국하자, 1기 경력기자로 입사하면서 SBS로 이적했으며 MBC 시절 프랑스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개국이래 1994년까지 초대 파리 특파원으로 활동했다.[10]

1994년 9월 귀국 후 정치부 차장 보임과 함께 1994년 10월 29일부터 1995년 9월 24일까지 SBS 뉴스2000[11]을 진행했으며 평일 8 뉴스를 진행했던 맹형규 앵커가 민주자유당 서울 송파(을) 조직책으로 갑자기 내정되어[12] 앵커직에서 하차하고 SBS를 퇴사함에 따라 1995년 9월 19일부터 SBS 8 뉴스를 대신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10월 정식으로 8 뉴스 앵커가 되었다. 1996년 10월 11일까지 8 뉴스를 진행했고 송도균 보도본부장에게 앵커 자리를 넘긴 후 요직인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했다.

1998년 10월 19일부터 전용학 앵커(정치부장) 후임으로 다시 8 뉴스 앵커로 돌아와 2000년 8월 7일까지 평일 진행을 맡았다. 다만 앵커 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 했는데,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위암 초기가 의심됨에 따라 2차 정밀검사에서 위암 초기를 판정 받았으며 # 병가를 냈다. 김형민 앵커의 후임 앵커는 최종적으로 주말 8 뉴스 진행을 마치고 취재 일선으로 돌아갔던 이영춘 기자로 결정났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이후 선거방송기획팀장, 사회 1부장, 정치부장 같은 요직에서 일했으며, 이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논설위원, 2007년부터 2009년 1월까지 보도 제작 1부장을 맡았고[13], 이후 다시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다, 같은 해 8월 인사에서 보도제작국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에 관훈클럽 총무에 선출되었고, 2008년에는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SBS에서는 토론 프로그램 진행을 주로 맡았다.

그런데...

3. 사건사고

2012년 연말에 보도제작국장으로 있으면서, 회식자리에서 여 기자를 성추행해서 물의를 빚은 바가 있다. 2013년 새해가 되자 회사에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사표가 즉각 수리되어 퇴사했다.

당시 김형민 앵커가 진행하던 SBS 시사토론은 이 여파로 2013년 1월 18일에 폐지되고 2013년 2월 14일부터 고희경 기자로 진행자를 바꾸면서 SBS 토론공감으로 이어가게 되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2013년 9월 26일에 폐지되면서 SBS는 지금도 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고 있다.[14]

그로부터 약 6년 후인 2019년 7월 SBS에 위와 비슷한 일이 또다시 발생하고 마는데, 역시 SBS 8 뉴스를 진행했었고 보도본부장을 역임했으며 차기 SBS 사장으로까지 거론되던 김 아무개 논설위원이 술을 마시고 지하철 역에서 여성의 신체부위를 불법촬영하다(...) 적발되고 해당 사실을 숨긴 채 개인사정을 이유로 진행하던 프로그램 시사전망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2019년 7월 8일 오전경 보도자료를 통해 실명이 노출되자 해당 논설위원은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였고 회사측도 이를 즉각 수리하여 퇴사 처리했으며, 김 아무개가 진행했던 시사전망대는 폐지되고 말았다.

이 사안들이 아마도 SBS가 MBC, KBS와 달리 온라인을 통한 정식 과거뉴스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 이유 중 하나로 추측되고 있다.

4. 근황

2015년 4월 한국수력원자력 언론홍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했으며[15] 이후 2017년 아주경제에서 초빙논설위원으로 활동했었다. 2019년에는 SBS 파리 특파원 3년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배재학 기자의 페이스북을 통해 SBS 파리 특파원 OB모임 자리에 있었던 모습을 공개했는데 과거에 비해 머리가 다소 빠진 모습으로 나왔었고 그 이후로도 별다른 활동은 없다. 2012년말에 저지른 성추행 전력으로 어떠한 공개활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 당시 MBC는 아직 사옥이 현 경향신문 본사인 정동에 있었다.[2] 김재철 - 김장겸 시기에 잘 나가면서 MBC 논설위원 실장을 지냈던 인물. 최승호 사장 취임과 함께 명예퇴직한다.[3] 1991년 함께 SBS로 이적후 도쿄특파원, 환경전문기자,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2018년 정의당 경기 고양시장에 출마했으며, 2020년 정의당을 탈당했다.[4] 노조원에게 메롱을 했던 그 춘천MBC 사장 맞다.[5] 시인 유치환의 외손자이다.[6] SBS 보도국장과 대통령실 홍보수석 등 역임.[7] OBS 보도국장, 연합뉴스 TV 보도본부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역임[8] MBC 보도국장 역임. 현 3선 국회의원[9] 이후 MBC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 역임[10] 현재는 SBS 파리 지국만 남겨서 유럽 지역 특파원으로 보직이 바뀌었다.[11] SBS 8 뉴스는 평일에만 방송했고, 대신 주말 뉴스는 다른 이름으로 방송했다.[12] 이후 15~17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내리 3선을 했고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13] 2008년부터는 부국장 대우를 받았다[14] 시사 토크 프로그램인 뉴스인사이드 => 뉴스브리핑이 포지션을 대체하고는 있으나 지금은 대담형 뉴스프로그램으로 방영되는지라 유형이 많이 바뀌어 같은 선상에 놓기에는 애매하다.[15] 몇 해 전 사내 성추행 전력으로 인해 낙하산 논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