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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6 16:58:48

김용하(군인)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용하
金瑢河
출생 1926년 11월 29일
경상북도 경주
사망 1950년 7월 16일
경상북도 문경
복무 대한민국 육군
최종계급 육군 소령
학력 육군사관학교
복무 기간 1948~1950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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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용하(金瑢河, 1926년 11월 29일 ~ 1950년 7월 16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김용하는 1926년 11월 29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6기로 입교하여 1948년 7월 28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그는 육군 제6사단 2연대에 배속되어 홍천지구 전투와 충주지구 전투에 참전하며 전공을 세웠다.
특히, 충주 달천강 도하작전에서 효과적인 근접 지원사격으로 아군의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원하였다.

이화령 전투는 1950년 7월 13일부터 7월 16일까지 국군 제6사단이 문경 북방의 이화령과 조령 일대에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1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전투였다. 해당 지역은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충지였으며,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전선이 대폭 후퇴할 위기에 놓이게 되는 중요한 전투였다.

1950년 7월 12일 오전 5시, 국군 제6사단은 문경지역 방어명령을 받고 주력을 해당 지역에 집결시켰다. 7월 13일 새벽, 김용하가 배속된 제2연대는 야간 도보행군을 통해 이화령에 도착하여 급편진지를 구축하였다. 7월 14일 새벽 4시 30분, 북한군 제1사단은 이화령 일대에 집중 포격을 가하며 공격을 개시하였다. 짙은 안개 속에서 북한군은 진지를 향해 몰려왔고, 곧이어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적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국군 제2연대의 방어선이 일부 돌파되었으나, 역습을 감행하여 진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김용하 대위가 지휘하는 중화기 중대는 강력한 화력 지원을 제공하여 역습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국군은 장갑차 3대, 트럭 10대, 개인화기 13정을 노획하고 포로 7명을 생포하였다.

김용하는 제1대대장 박노규 중령의 명령을 받아 주력 부대의 철수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적의 포격이 집중되는 가운데 그는 직접 대원들을 독려하며 마지막까지 진지를 사수하였다. 총탄이 빗발치는 능선과 포화가 작렬하는 계곡을 오가며 방어 작전을 수행하던 그는 결국 적의 포탄 파편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소령으로 1계급 특진과 함께 1950년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또한 2021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1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1계급 특진(사후 추서)
을지무공훈장(1950년 12월 30일, 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21년 12월)

4. 참고 자료

순직경찰관 대장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김용하 육군 소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