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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8 23:14:43

김왕호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왕호
金王虎
출생 1929년 3월 20일
평안남도 안주
사망 1953년 6월 22일
강원도 철원
복무 대한민국 육군
최종계급 육군 소령
복무 기간 1950~1953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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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왕호(金王虎, 1929년 3월 20일~1953년 6월 22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김왕호는 1929년 3월 20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하였다.
안주중학교를 졸업한 후 갑종장교 1기로 육군에 입대하였으며, 1950년 10월 25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백골부대’로 알려진 제3보병사단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춘계 공세 당시 가리봉 전투와 현리 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1952년 4월 20일 대위로 진급한 김왕호는 제3사단 22연대 1대대 3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 북방 우두산 일대에서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특히 748고지(피의 고지)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748고지는 아군의 주저항선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적에게 넘어갈 경우 국군의 방어선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1952년 9월 28일, 중공군이 748고지를 점령하자 국군 제3사단은 두 차례에 걸쳐 탈환 작전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제22연대 1대대가 투입되었고, 김왕호 대위는 3중대를 이끌고 고지 탈환을 위한 공격 임무를 부여받았다. 김왕호 대위는 정면 공격만으로는 고지 탈환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선제포격 없이 적의 배후로 침투하는 기습작전을 결정하였다. 1952년 10월 2일 야간 공격을 감행한 김왕호 대위와 중대원들은 중공군 2개 중대가 방어하던 748고지의 주 진지 배후로 은밀히 접근하여 격전을 벌였다. 격렬한 백병전 끝에 오후 7시경 748고지 동쪽을 점령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대대가 고지를 완전히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김왕호 대위는 이러한 공로로 1952년 10월 21일 화랑무공훈장을, 1953년 1월 3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1953년 6월 22일 강원도 김화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그의 공훈을 기려 육군 소령으로 1계급 특진이 추서되었다.

김왕호 소령은 호탕하고 쾌활한 성격과 단단한 체구로 인해 부대원들로부터 ‘왕호(왕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는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신념을 지닌 진정한 백골부대 용사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2022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화랑무공훈장(1952년 10월 21일 수여)
충무무공훈장(1953년 1월 3일 수여)
소령으로 1계급 특진(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22년 8월)

4. 참고 자료

육군본부, 『한국의 전쟁영웅들』, 199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김왕호 육군 소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