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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고려대학교 정문 앞 1인 시위 |
1986년 서울 출생. 2010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했다. 한국 최초의 ‘대학 거부 선언’으로, 방송MBC 9시뉴스KBS2 9시뉴스과 신문, 포털 1면 등에 오르며 뜨거운 논쟁과 강력한 울림을 일으켰다. 그 후 언론 및 정치 참여 제안을 거절하고 비영리단체 <나눔문화>*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국내외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현장 활동과 대안 삶의 문화 운동에 주력해왔다. 출판 편집 및 전시 기획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본인 저서로는 『김예슬 선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2010), 『촛불혁명』(2017)이 있다.
2. 생애
2.1. 2010 한국 최초의 대학거부선언
대학거부 대자보에 누군가 붙여놓았던 응원의 메시지와 장미꽃 |
2010년 3월 1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교정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이 ‘자퇴 선언’은 한국 사회에 파문을 몰고 왔다#. 학생들# #은 물론 대학 교수, 교육 전문가들의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때부터 ‘대학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서 다뤄지기 시작했으며[1]#, 2000년대 첫 1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자기계발주의’ 문화에 균열의 조짐을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대자보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2.1.1. 반응
김예슬 선언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대자보가 붙었던 고려대 정경대학 담벼락에는 약 10여 개의 지지 대자보가 연달아 붙었으며#, 응원을 위한 문화제가 열리고#, 대학의 기업화를 20대의 눈으로 되짚는 ‘김예슬 선언 그 이후’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자퇴하는 대학생들과 입시 자체를 거부하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김예슬 선언'이라는 온라인 카페가 만들어져 지지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 #.- 사람다운 길을 찾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글 앞에 수많은 학생들이 발길을 멈췄습니다. "다 고시준비나 하고 자격증 따느라 바쁘고 그런 거에만 집착하고 있는 거 같아서..." 감당하기 어려운 등록금, 청년 실업, 하루하루가 걱정인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대신 적어준 느낌이라고 공감했습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공감한다. 고등학교 때 했던 경쟁을 또 하는구나. 평생 하겠구나..." 사이버 게시판에도 큰 화제가 돼, 하루 만에 1천 개 가까운 댓글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학 생활이 삭막한 취업 준비과정으로 변해버린 현실, 또 열심히 노력해도 불투명한 미래, 희망보다는 좌절이 많은 실상을 부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대학생활에 대해서) 반성의 기회가 되면 좋을 거 같아요. 깊이 생각해보고..." 대학이란 무엇이고, 왜 대학을 다니는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물음이 20대 대학생의 글을 통해 화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MBC 9시뉴스
- “김예슬 선언은 6월항쟁 이후의 작은 혁명” 이기호 한신대 교수#
- “자본이 제안하는 객관식 자유 앞에서 그녀는 다른 차원의 자유를 말했다.”#
- “그는 이렇게 시대의 아방가르드가 되었다.” 우석훈 경제학자 #
- “김예슬은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길을 잃는다”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인간 선언의 주체로 남았다.”#
- “나는 (…)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사실, 김씨가 말하기 이전에도 많은 대학생들이나 양심적인 교수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걸 것인가?'하는 물음처럼,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이 '불편한 진실'을 누가 까발리고 누가 먼저 나서 대안적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모두들 마음속으로만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
- “김예슬의 ‘자퇴 선언’을 한 학생이 읽어가자 일순 강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잔기침 소리가 잦아졌고, 여기저기서 나직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낭독 후 자신의 느낌을 말하던 여학생이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자 학생들의 눈가에 눈물이 번져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저 쾌활해 보이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저런 응어리가 맺혀 있었다니. 처음으로 학생들의 심연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내 안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아버지 세대로서, 선생으로서 부끄러웠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
2.1.2. 책 출간 및 인터뷰
2010년 4월, 대자보에 담지 못한 고민을 담아낸 책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출간했다#. 2010년 베스트셀러이며, 이후 청춘들이 자신들의 현실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들이 이어졌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인터뷰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이른바 ‘김예슬 선언’이라는 대자보를 학교에 붙이고 실제로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김예슬 씨, 한 달여 만에 드디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저희도 백방으로 연락을 취해봤지만 이분이 꼭꼭 숨어있어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었는데요. 대자보에 담지 못했던 얘기를 담은 책을 하나 썼다고 하네요. 직접 만나보죠.◇ 김현정 앵커> 왜 그렇게 꽁꽁 숨어 계셨어요?◆ 김예슬> 처음에는 저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 많긴 했는데요.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좀 더 집중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좀 있었습니다.◇ 김현정 앵커> 대자보 제목하고 똑같은 제목의 책을 하나 들고 오셨어요. 이건 언제부터 준비를 하신 겁니까?◆ 김예슬>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요. 제가 대학 거부를 한 뒤에 참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고 격렬한 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현정 앵커>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김예슬> 네, 그중에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도대체 왜 대학을 그만두냐, 진짜 이유가 뭐냐” 이런 질문이 많았는데요... 사실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어본 사람은 없었는데, 대학을 왜 가는가는 언제부턴가 사라진 물음이 됐고, “왜 그만두는가?” 이건 좀 이상한 물음처럼 들려왔습니다. 어떤 젊은이의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저도 제 생을 걸고 큰 물음을 던졌던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고민했던 생각들을, 대자보에 미처 담지 못했던 것들을 나름대로 또 다른 책임으로 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현정 앵커> 지금 김예슬 씨가 얘기하는데,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김예슬> 사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많은 학생들이 그런 것처럼 초중고 12년 동안 세계 최장의 학습노동을 하면서 살았죠. 인생을 결판 짓는 대학이라는 하나의 주어진 정답이 있잖아요. 그래서 물음을 품기조차 어렵게 살았던 것 같아요.◇ 김현정 앵커> 뭐가 그렇게 김예슬 씨의 대학생활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자퇴 선언까지 하게 만든 겁니까?◆ 김예슬> 우리 젊은 세대의 키워드가 스펙, 자격증이 돼버렸잖아요. 그런데 정말 억울했어요. 스펙에 매달리자니 젊음이 서럽고, 다른 걸 하자니 다시 뒤쳐질까 불안한 날들이... 늘 학창시절에는 일단 좋은 대학만 들어가라, 또 대학에 와보니까 일단 좋은 직장에 취직만 해라, 끊임없이 삶을 유보하도록 강요하는 게 이 사회가 아닌가...◇ 김현정 앵커> 그게 우리 대학의 현실이고 문제라는 것은 다들 느낍니다. 학과 불문하고 죄다 토익책 꺼내놓고, 죄다 공무원 공부하고, 고시 공부하고.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시스템을 박차고 나올 생각은 감히 못하거든요. 자퇴까지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게 있습니까?◆ 김예슬>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도대체 이대로 언제까지 가야 되는지 끝이 안 보이더라고요. 큰 물음이 사라진 대학이 대학 4년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닌가, 좀 두렵기도 했고. 지금을 놓치면 또 다시 평생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런 것을 찾지 못하고 살지 않을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서 십 수 년 씩 삶을 바친 결과가 사실 절반 이상이 취업도 안 되고, 또 저희가 꿈을 찾는 게 꿈이 돼버린 그런 세대이기도 하고...◇ 김현정 앵커> 자퇴하고 나서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솔직히? (웃음)◆ 김예슬> 막상 용감하게 나서긴 했지만 막막한 생각이 들기도 한데, 아파야 낫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혼란스러울 때 있지만 이 혼란은 이미 주어졌던 수많은 정답이 아니라 좀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은 조금 더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김현정 앵커> 예슬 씨를 응원하는 문자들도 많이 오고 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 경향신문 “거대한 적 ‘대학·국가·자본’에 작은 돌을 던진 것”#“안녕하세요.” 지난 12일 오후 7시 경향신문사를 찾은 김예슬씨(24·여)는 밝게 웃었다. 대학 교정에 대자보를 붙이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한 달째. 세상으로 다시 나온 그의 손엔 「김예슬 선언」이라는 125쪽 분량의 작은 책자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대학을 거부한다는 게 단순히 치기어린 행동은 아니었다”며 “대학생활 내내 스스로에게 던졌던 물음 중 일부가 대자보의 내용이고 더 많은 고민들을 책으로 담아봤다”고 말했다. “사실 답보다는 물음이 많은 책”을 썼다는 그와의 인터뷰는 경향신문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사무실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의 이야기는 차분했지만 때로 단호했고, 함께 고통 받는 이들을 말할 때는 따뜻함도 느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조용히 그만둘 수도 있었는데 대자보를 붙이고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이유는.“내 안의 비겁함과 싸우기 위해 그렇게 했다. 거대한 사회적 모순은 은폐되고 모든 것이 개인의 문제인 양 떠넘겨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무력한 개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고통이 깊어가고 있으니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고 생각한다.”◆일각에서는 대학 내에서 대학을 바꿔보는 운동을 해볼 수도 있지 않으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른바 ‘극단적인 선택’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대학 내에서 대학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중요하고 그런 분들도 있다. 하지만 대학의 존재 자체가 변화된 상황에서 안에서 바꾸는 것 이외에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적경쟁의 의자에 앉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지금의 삶이 되레 더 극단적인 것 아닌가.”◆대학거부 선언 후에 많은 ‘각주’들이 달렸다. 88만원 세대론에 대한 논의도 다시 불이 붙은 것 같다.“우리 세대의 현실 문제를 88만원이라는 숫자로 풀어낸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담을 수 없는 진실이 축소되고 단순화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88만원을 188만원으로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유일잣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대학·시장·국가의 3각 동맹에서 예슬씨 몫의 돌멩이가 빠졌지만 탑을 새로 세우려면 개인의 탈주만으론 불가능할 것 같다.“학습된 두려움이나 난 무력한 개인이라는 두려움 앞에 지레 포기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고 북돋우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일상의 속도로 시스템은 계속 굴러가고 내 선언은 잊혀질 거다. 막막한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큰 존재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큰 존재들이 자기 안에 있는 물음들로 시작하고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밀어가는 힘을 믿으면서 갈 뿐이다.”
2.1.3. 대자보 문화의 부활
1980년대 학생운동 문화였던 대자보 문화가 2010년 ‘김예슬 선언’을 통해 계승되며 사회 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견 표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김예슬 선언’ 대자보가 고려대 정경대에 붙은지 2주 만에 국민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에서도 기업화된 대학을 비판하는 15건의 대자보가 붙었으며*, 2013년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이어졌다. 2015년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하는 대자보가 전국 69개 대학에 붙었으며*, 2016년 최순실 게이트 당시에도 전국 주요 대학에서 대자보를 통한 시국선언과 정권 비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2.2. 2005- 나눔문화 활동
강의와 인터뷰 요청, 정치권 등의 제안이 많았으나 『김예슬 선언』 책에 쓴 것처럼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가겠다”며 비영리단체 나눔문화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예슬은 대학거부선언을 하기 이전인 2005년부터 나눔문화의 대학생 모임인 ‘대학생나눔문화’에 참여하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토건사업 반대*, 세월호 진상규명,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 등 국내외 어려운 현장에서 함께 해왔다.4대강 토건사업 반대 |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 |
2010년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부터, 2014년 <다른 길>展을 비롯하여 '라 카페 갤러리' 전시 기획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2024년 11월 현재 <다른 오늘> 전시중).
에디터로서 책임편집을 맡은 주요 도서로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에세이 『눈물꽃소년』 『걷는 독서』, 사진에세이 『하루』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길』 『내 작은 방』 『아이들은 놀라워라』 『올리브나무 아래』 『다른 길』,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를 비롯하여 건축가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 이반 일리치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E.F.슈마허의 『굿 워크』, 스티븐 M.그리어 박사의 『우주 비밀 파일』, 아미시 공동체 스콧 새비지의 『그들이 사는 마을』 등 다수가 있다.
2.3. 2016-2017 촛불혁명
2017년 10월 박근혜 탄핵 시위 현장에 23주 동안 빠짐없이 나가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과정을 기록한 책 『촛불혁명 ― 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를 출간했다*.“촛불의 아이들이 이 혁명의 기억과 함께 자라나갈 수 있는 책, 이 아래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이걸 딛고 나아갈 반석과 같은 책, 그런 바람을 담아 이 책을 지었습니다.”
2.3.1. 인터뷰
- 경향신문 [서의동의 사람·사이- 김예슬] “꿈이 뭐냐고 재차 묻던 시인 그제야 깨달았죠 꿈은 직업보다 크다는 걸”*“학교에서 키워야 할 건, 생각·손발·우정의 힘”◆수험생 당사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열병을 앓는 시기이기도 하다.“초·중·고 12년의 결과가 하루에 결판나는, 그 결과가 아이의 수십년을 좌우할 거라고 믿는, 불행하면서 불안한 구조가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수험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지금의 청년들은 ‘꿈을 찾아내는 게 꿈인 세대’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어릴 적부터 쉴 틈 없이 지식이 주입되다 보니 배움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당연할 것 같다. 배움의 ‘단식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초·중·고 12년간을 의자에 붙어 앉아 교과목의 지식들을 암기해야 하는 처지다. 지나고 보니 살아가는 데 쓸모 있는 지식도 많지 않다.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것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교과목뿐 아니라 위험 대처능력을 기르는 실습교육도 필요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도록 체력도 길러야 하지만 모든 게 입시로 쏠리다 보니 생략돼 버린다.“위험도 삶의 당연한 속성인데 학교는 이런 위험을 원천 차단한 ‘무균실’ 같은 공간이 돼버려 저항력을 기를 수 없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부딪치고, 스스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서 ‘번아웃증후군’에 걸린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언젠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 돼’, 그 ‘언젠가’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도 있다. 어린 시절 여기저기 부딪쳐가며 스스로가 어떤 존재임을 깨우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내 안에 나도 모르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었다”◆대학이든 사회든 ‘질문’이 많이 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란 말에서 보듯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대학 2학년, 나눔문화에 처음 왔을 때 박노해 시인이 ‘꿈이 뭐냐’고 물으시더라.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하니 빙긋 웃으시면서 다시 ‘꿈이 뭐냐’고 묻더라. ‘아!’ 하고 깨달았다. 꿈이 직업보다 훨씬 큰 거라는 걸. (내 인생에서) 결정적인 질문이었던 것 같다.”◆촛불 현장을 계속 지켜왔는데 학벌사회를 바꿔보자는 청년들의 열망을 느꼈나.“촛불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정유라의 이대 특혜입학이었으니, 분노의 목소리가 많았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느낀 건 개인은 진화하고 있는데 사회구조는 낙후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전 지구가 연결돼 있는 시대이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똑똑하고 재능도 많은 반면 체제는 너무 낡았다.”“나 자신을 새롭게 알아온 7년”◆지난 7년간 스스로 돌이켜보면 어떤 점이 달라지고 성장한 것 같은가. 손기술이 늘었다든지.“(웃음) ‘뱃속에서부터 웃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기쁘게 웃는 힘, 진심으로 슬퍼서 우는 힘이 커졌다고 할까. 많이 울고 웃으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예전엔 울고 웃는 능력이 마비됐던 것 같다. 손을 쓰는 일도 많아졌고 (솜씨도) 늘었다.”◆수능을 치른 대학 예비생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나.“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결코 시험의 등수가 고스란히 인생의 등수가 되지는 않을 거다. 정말 고생많았다. 우선 잘 자고 잘 먹었으면 좋겠다.”
2.3.2. 일본 출간
2020년 1월 『촛불혁명 』의 일본어판 『キャンドル革命』이 번역 출간되었다*. 일본어판을 펴낸 중견 출판사 ‘커먼즈’의 오에 다다아키 대표는 발간사에서 “한국 인구의 3분의 1인 1700만명이 참가한 촛불혁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워 세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 일본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촛불혁명의 궤적을 정성껏 다듬어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기억은 기록으로 역사가 됩니다. 불의한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두 가지는 살아있는 시민들의 항쟁, 그리고 그걸 기록한 한 권의 책이라고 믿습니다. 홍콩, 미국, 프랑스, 칠레, 수단, 레바논 등 세계 각지에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들이 나서고 있는 이때, ‘코리아의 촛불혁명’은 많은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부패한 정권을 바꿔내고자 분노하고 갈망하는 일본 시민들께도, 이 책이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예슬,『촛불혁명』 일본어판 발간에 부쳐
김예슬,『촛불혁명』 일본어판 발간에 부쳐
일본 국회 연설 |
2월 일본 국회에서 '한국 촛불혁명'의 의의를 알리는 연설을 했다연설 전문 영상
- 아사히신문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를 움직였다’*촬영한 사진은 4만 장. 유모차 가족, 교복 입은 고교생, 농민과 종교인 등 1,500여 개 다종다양한 단체들도 연계하면서, 희로애락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보인다. 피사체의 깊은 마음속이 보이는 것 같은 컷 159장을 선정했다. “시위는 처음 참가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실패할 경우 사회에 다시 불어닥칠 불안도 안고 있었고요. 사진을 찍어도 될지, 이야기를 들려줄지 긴장했습니다만 오히려 반대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김예슬 씨. 집회를 거듭할수록 목표는 대통령 파면에서, 그 이후의 새로운 생활로 나아간다. “쌓이고 쌓인 문제는 발밑에서부터 바꿔야죠.” 참가자가 하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져 갔다.
3.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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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2010) | 촛불혁명(2017) |
4. 여담
[1] “’김예슬 선언’이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