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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9 22:12:19

김영남(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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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3년 11월 23일
전라남도 완도군
사망 1950년 7월 30일
경상북도 예천군
서훈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1963년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광복군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23년 11월 23일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전수대학 졸업 후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소위로 복무하다가 1944년 간부후보생 훈련 도중 무장탈영을 주도하였고, 류재영, 성동준, 박영 등 7명을 이끌고 탈출하였다. 중국군 제3전구 충의구국군 사령부에 도착하여 미군 고문관에게 일본군 정보를 제공하였고, 이 사실이 중국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 그 후 광복군에 편입되어 징모3분처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1949년 헌병학교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육군 소령으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복무하던 중 전투 현장으로 찾아갈 것을 간청하였고, 직접 전투에 뛰어들다가 7월 29일 경북 예천에서 전사하였다.

1961년 학병동지회에서 완도군전적비를 건립하였다.

3. 여담

장경순국회부의장과 일본 유학시절 친구였으며, 회고록 "나는 아직도 멈출 수 없다." 에서 생전 일화들을 언급하였다. 장경순 전 부의장의 회고에 따르면 믿음직한 거구에 서글서글하고 밝은 성품이었다 한다. '풍운아'로 지칭할만큼 거침없는 면모를 보였으며, 무장탈영을 직접 주도하였고, 당시 남경사관학교에서 유일한 탈출 사례였다. 해방 후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독립군 출신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하자 직접 찾아가 힐책했다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육군헌병감 최영희 장군이 헌병학교 입학을 권하였고, 육군 헌병으로 복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