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김민재 Kim Minjae | |
출생 | 1983년 10월 13일 ([age(1983-10-13)]세)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3cm, 97kg |
종목 | 역도 |
체급 | 94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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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남자 역도 선수다.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2011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망주로 불렸으나, 2002년 부상, 슬럼프로 대학교 1학년 중퇴하며, 상무가 아닌 현역 입대,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다시 선수로 복귀하게 된 계기는 군 복무 중에 2004 아테네 올림픽 역도 경기를 보다가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서였다. 부상을 털어내고, 2007년 선수 복귀, 입대 전 69kg급이던 체중을 꾸준히 늘렸다. 94kg급 인상 한국신기록 경신에 올림픽 은메달까지 따내며 많은 것을 일궈냈다. 당시 세계신기록이었던 188kg과 겨우 3kg 차이였다. 이는 국제대회에서도 1~2위 수준을 다툴 정도이며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인상 부문만큼은 1위를 차지했다.[1]2.2. 2012 런던 올림픽
그런데, 4년 후인 2016년에 선수들의 집단 도핑 파문이 일어나면서 선수들의 기록이 줄줄이 박탈되었다. 금, 은, 동메달리스트들뿐만 아니라 4위, 6위, 7위, 11위까지 모두 도핑을 한 것이 발각되었다.[2] 결국 도핑에 연루되지 않았던 선수들이 뒤늦게나마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금메달은 5위를 한 이란의 사에이드 모하메드푸어에게 승계되었고, 당시 8위였던 김민재는 은메달을 받게 되었으며, 9위를 한 폴란드의 토마스 지엘린스키에게는 동메달이 수여되었다. 당시 금메달리스트였던 일리야 일린은 자국의 역도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으나, 2개의 금메달뿐만 아니라 세계 기록까지 박탈되면서 명성에 제대로 먹칠을 하게 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비롯하여 역대 올림픽의 기록 분포를 보면, 남자 역도 94Kg 이하 체급에서 정상을 차지한 선수의 기록은 합계 400kg을 살짝 넘긴 정도가 대부분이었다.[3] 하지만 2012 런던올림픽 때는 합계 400kg 이상을 들어올린 선수가 무려 5명에, 1위를 기록한 일리야 일린은 무려 합계 418kg를 들어올렸다. 이는 94kg 이하급 세계신기록일 뿐만 아니라, 동 대회 105kg 이하급 우승기록보다 높은 기록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당연히 도핑의 효과였다. 저렇게 높은 기록을 세운걸 보고 김민재가 사진에 나온 것처럼 내심 ‘약 빤거 아닌가’ 생각했었고 그 예상이 제대로 적중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선수가 세 명 있는데, 남자 역도의 전상균과 여자 역도의 장미란, 임정화다. 임정화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최종 성적이 4위였는데 1위, 2위가 모두 도핑으로 메달을 박탈당해 은메달을 승계했고, 장미란은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최종 성적이 4위였으나 3위가 도핑으로 메달을 박탈당해 동메달을 승계했다. 그리고 전상균은 장미란과 마찬가지로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최종 성적이 4위였는데, 3위를 했던 러시아 선수가 도핑을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동메달을 승계했다.
3. 은퇴 이후
2019년 10월 9일, 전국체전 역도 경기장에서 위의 이유로 2012 런던 올림픽 -94kg급 은메달을 뒤늦게 수여받았다. 당초 IOC는 수여식을 2020 도쿄 올림픽이나 2019 세계선수권 기간 내에 시상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이미 은퇴 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김민재가 국내에서 수여식을 원했다고 한다.[4]2023년 제주일보의 한 기사를 통해 근황이 알려졌다. 남녕고등학교 역도부 지도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라는 대회에 출전해 역도 -102kg 종목에서 1위를 기록했다.[5]
4. 수상 기록
올림픽 | ||
은메달 | 2012 런던 | -94kg[6] |
아시안 게임 | ||
은메달 | 2014 인천 | -105kg[7] |
동메달 | 2010 광저우 | -94kg |
아시아선수권 | ||
금메달 | 2011 퉁링 | -94kg |
금메달 | 2012 평택 | -94kg |
5. 기타
- 복귀 이후 제주도청에 플레잉코치로 입단했는데, 사실상 연습생 신분이나 다름없었다. 헬스클럽 트레이너 일을 겸하며 훈련을 하였다. 타고난 감각과 불굴의 노력으로 공백기가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대회를 종횡무진 휩쓸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순수 운동 열정 하나만으로 걸어온 길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 한국 역도는 1980년대 소련 출신 고려인 국가대표 코치들의 영향이 크다. 용상에 강하고, 인상에 약한 러시아(소련) 스타일이기에 김민재처럼 인상 부문 세계랭킹 1위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2] 이들의 국적은 카자흐스탄(1위, 7위), 러시아(2위, 4위), 몰도바(3위), 아제르바이잔(6위), 아르메니아(11위)인데, 모두 소련에 소속되어 있던 나라들이다.[3] 참고로 런던에서 김민재가 달성한 합계 기록이 400kg가 조금 안 되는 395kg였다.[4] 그리고 이 날의 메달 수상으로 올림픽, AG,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갖게 되었다.[5] 용상과 인상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두 종목 모두 고루고루 잘 했단 뜻.[6] 상위 선수들의 도핑 적발로 메달을 승계받았다.[7] 십자인대 파열을 극복하고 따낸 성과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상이 더 심해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