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본관 | 김해 김씨 |
출생 | 1888년 11월 27일 |
경상도 동래도호부 좌이면 구포리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 |
사망 | 1924년 12월 3일 (36세) |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 |
묘소 |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370 |
직업 | 독립운동가 |
가족 | 1남 2녀, 배우자 김연이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다.2. 생애
1919년 구포에서 미곡상을 경영하고 있을 때 김옥겸, 양태근, 유기호 등과 함께 태극기 수백 장을 제작하여 1919년 3월 29일 1천2백여 군중을 모아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곧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각종 고문을 받고 8월 26일 부산지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부산옥에서 고생하였다. 고문후유증과 체포당시 입은 총상으로 고생하다 1924년 12월 36세로 순국하였다.[1]3. 여담
장남인 김성술은 규슈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초대단장을 역임했다.[1] 출처:항일투사 열전 2 추경화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