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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16:46:20

김기선(1927)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27년 1월 5일에 태어났다.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송림보통학교 졸업 이후 제철소 노동자로 일하다가 해방 후에 공산당 열성분자가 되어 겸이포에서 입당하였다. 이후 1947년 중앙당학교에 진학, 1949년 조선로동당 황해도당 조직부 지도원에 배치되었다. 6.25 전쟁 중 가족들이 미군에게 몰살당했다고 한다.

1953년 조선로동당 황해도당 조직부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1955년 소련 공산당 고급당학교로 유학했다가 1956년 3월에 졸업하고 귀국, 1957년에 임어노동자동맹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59년 1월, 황해남도 연안군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2년,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다. 1965년에 황해북도 당위원장에 이르렀다. 1967년에는 황해북도 당책 자리는 리용익에게 물려주고 황해북도 인민위원장으로 이동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1972년 황해북도 행정위원장, 1977년, 평안남도 행정경제위원장, 1979년 남포시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다가 1980년 7월, 강원도당 책임비서로 이동, 10월의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82년, 개성시당 책임비서에 임명되었다.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1982년 6월, 개성시당 책임비서에 임명되었다. 1985년 6월, 개성시 인민위원장을 겸하였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1년 12월, 림수만에게 자리를 내주고 개성시당 위원장에서 해임되었으며 1992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3차 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에서 해임되었다. 2009년에 방영된 김기선 소개편집물에 따르면 불치병에 걸려 있었다고 하니 일단은 병환 때문에 퇴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97년 심화조 사건에 말려들어 서관히와 함께 총살당했다는 풍문이 남한에 전해졌다. 저세한 경위는 알 수 없어도 정말로 심화조 사건에 말려들었던 모양인지 채문덕 등이 역으로 숙청당하고 나서 복권되어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공식적인 사망 날짜는 1997년 8월 6일이다. 탈북자 박문일의 증언에 따르면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1단계 숙청 때 김정일 암살을 도모했다는 누명을 쓰고 피창린, 림형구 등과 함께 처형당했다고 한다.

3. 여담

인민무력부 간부국장을 지낸 김기선이 있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90년대 북한인명집도 이 김기선이 군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혼동할 정도다.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