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기욤 주브넬 데 우르생 Guillaume Jouvenel des Ursins | |
생몰년도 | 1400년 3월 15일 ~ 1472년 6월 23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파리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파리 | |
아버지 | 장 주브넬 데 우르생 | |
어머니 | 미셸 드 비트리 | |
형제 | 장, 미셸, 자크 | |
아내 | 제네비에브 드 에롱 | |
자녀 | 장, 자케트 | |
직위 | 뜨헤넬 남작, 마히늬르샤뗄의 영주, 트루아 자작, 상스 집행관, 프랑스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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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 귀족, 정치인. 샤를 7세의 총리이다.2. 생애
1400년 3월 15일 프랑스 왕국 파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장 주브넬 데 우르생은 파리 법원의 대변인이자 파리 상인들의 장관을 역임했고, 도팽 루이의 총리로서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냑파간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졌을 때 아르마냑파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1413년 부르고뉴파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샤틀레에 투옥되었지만, 뒤이은 학살을 모면했고, 나중에 석방되어 도팽 샤를이 있는 부르주로 피신해 여생을 조용히 보냈다. 어머니 제네비에브 드 에롱은 샤를 6세의 재정 고문이었던 장 르 메르시에의 조카이다. 형제로 장, 미셸[1], 자크[2]가 있었다.아버지로부터 트루아 남작, 뜨헤넬 남작, 마리늬르 샤텔의 영주를 물려받았고, 1423년 6월 도팽 샤를에 의해 푸아티에 의회의 고문으로 선임된 뒤 도팽 샤를이 읶느느 전쟁에 관한 재정을 관리했다. 1429년 7월 17일 랭스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을 때 참석한 뒤 기사 작위를 받았다. 1435년부터 1440년까지 전쟁에 관한 재정을 관리했으며, 1435년부터 1440년까지 상스에서 세네샬로 활동했다. 샤를 7세는 그를 1445년에 프랑스 총리로 임명했고, 1458년 알랑송 공작 장 2세 달랑송의 반역죄를 심의하는 재판 동안 알랑송 공작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겼다. 1466년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 치하에서 프랑스 총리를 재역임했다.
그는 생전에 수많은 삽화를 의뢰했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장 푸케는 1460~1465년에 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상단의 그림이 이 초상화다. 이것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익명의 예술가는 그의 이름을 딴 '주브넬의 마트레(Maître de Jouvenel: 주브넬의 마스터)' 로 자처하면서 730개의 삽화를 그려서 책에 삽입했다. 1472년 6월 23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제네비에브 드 에롱과 결혼해 아들 장 주르벨 데 우르생과 딸 자케트를 낳았다. 장은 뜨헤넬 남작, 의회 고문을 역임했고, 자케트는 프랑스 건축가 자크 드 보쥬의 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