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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4-09 00:19:56

사서(남송)

금룡대왕에서 넘어옴
명 추존 대왕
청 추존 대왕
金龍四大王 | 금룡사대왕
시호 홍우감응호국제운금룡대왕
(弘佑感應護國濟運金龍四大王)
현우통제소령효순광리안민혜부보운호국부택수강인보강찬익선성영감보양유부정덕비석우국제금룡사대왕
(顯佑通濟昭靈效順廣利安民惠孚普運護國孚澤綏疆敷仁保康贊翊宣誠靈感輔化襄猷溥靖德庇錫佑國濟金龍四大王)
성씨 사(謝)
서(緒)
부친 사맹(謝孟)
모후 불명
생몰 ? ~ ?

1. 개요2. 생애3. 추봉4.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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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송 말기 전당현(錢塘縣) 출신 인물로 아버지는 사맹(謝孟)이다. 충절을 지킨 최후가 후대 왕조에게 인정받아 금룡대왕(金龍大王)에 추존되어지고 신으로 모셔지는 등 그를 주체로 한 신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가 추봉받은 대왕(大王) 작호는 'prince(왕작)'가 아닌 'King(국왕)[1]'으로 표기되며 이러한 대왕의 다른 추봉 사례는 황대왕(黃大王), 주대왕(硃大王)이 확인된다.

2. 생애

성격은 강직했다고 하며 당시 송이 원나라에게 멸망 직전에 처하자 배움은 지속하되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원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으며 금룡산(金龍山)[2]의 꼭대기에 망운정(望雲亭)을 짓고 은거했다.

이후 원나라 병사들이 그곳을 침입해오자 충절을 지키기 위해 강에 투신해 자살했는데 시신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하며 그의 충절을 존경한 향민들은 사서를 금룡대왕(金龍大王)으로 높여 부르는 등 신격화를 거행했다.

3. 추봉

주원장이 원나라에 할거할 당시 귀신이 된 사서가 원군(元軍)을 물리쳤다고 하며 홍무제로 즉위한 주원장은 사서를 수신(水神)으로 추앙했고 금룡사대왕(金龍四大王)에 봉했다.

1624년, 천계제 시기 호국제운금룡대왕(護國濟運金龍四大王)에 봉해졌으며 1641년 숭정제가 홍우감응호국제운금룡대왕(弘佑感應護國濟運金龍四大王)으로 가봉하였다.

1879년, 광서제 시기 현우통제소령효순광리안민혜부보운호국부택수강인보강찬익선성영감보양유부정덕비석우국제금룡사대왕(顯佑通濟昭靈效順廣利安民惠孚普運護國孚澤綏疆敷仁保康贊翊宣誠靈感輔化襄猷溥靖德庇錫佑國濟金龍四大王)으로 최종 가봉되었다. 참고로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시호이나 그의 신앙은 마조에 밀려 광서제 시기엔 시호의 길이가 무색하게 영향력이 미미했다고 한다.

4. 가족



[1] 참고.[2] 現 안시현에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