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되는 일 없을까. 악마 같았던 서은숙 작가 밑에서 온 갓 고초를 겪다 결국 탈출해 친구와 함께 바닷가 근처에서 유유자적 책방이나 운영하려 했지만 이 역시도 복잡한 삼각관계로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누가 알았으랴. 이제 불안정한 도전이 필요 한 어떤 것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아영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 했다. 직장인이 되면 운보다는 관성에 따라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입사를 하고 정신없이 남들이 쓴 글이나 읽으며 게으른, 말귀 못 알아먹는 작가들을 상대하고 있자니 공황이 올 지경인데, 직장도 만만하게 볼게 아니었다.
그렇게 구멍 나버린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파고드는 한 남자가 있으니. 그는 바로 2미터 맞은편에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하루 종일 함께 일 하는 송우빈 대리였다.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그. 사내 여직원들 모두의 흠모의 대상. 아영은 굳이 야근을 했다. 어차피 집에 가면 혼자서 우빈의 인스타나 훔쳐볼 텐데, 함께 있는 게 베스트! 가슴이 뛰고 눈인사라도 할라치면 기절할 것 같다. 그런데 이놈의 포털사엔 잘난 년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내 모습은 그저 초라해 보이기만 한데... 관심이 도를 넘어 그에 대한 뒷조사에 몰입했고 인사과 직원과 언니동생이 되어 입사지원서류까지 탐닉하기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빈은 대뜸 자기를 작가로 키워 주겠다고 한다. 사람들 몰래 준비하던 꿈을 들킨 걸까! 관심을 받으니 심장이 벌렁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만에 악몽이 되었으니... 레베카 작가의 원고를 받으러 강원도로 출장을 떠난 우빈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부리부리한 눈. 날렵한 눈썹. 탄탄한 어깨. 늘 몸매가 잘 드러나는 셔츠를 입고 소매를 세 번 접어 올린 팔을 멋들어지게 흔들며 걸어간다. 거기에 다정한 말투와 눈인사까지.. 여심은 요동친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사무실에서 취향을 어찌 알았는지 시럽 원 펌핑 커피를 타고 준비한 초코가 박힌 수제쿠키를 들고 아영이 말을 걸어온다. 무료했고 졸렸던 차, 우빈은 아영이 반갑고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드라마 마니아에게 드라마 보조작가 출신이 왔으니 통할 수밖에.
“글 제대로 쓰고 싶으면 얘기해요, 내가 도와줄게요” 레베카 작가를 직접 데려와서 키운 것 처럼 아영도 관심이 있다면 제대로 키울 자신 있다.
사연 없는 살인범이 있으랴. 하지만 모든 것은 결과론 적인 것이리라. 현주는 피의자심문을 받으며 모든 것을 밝혔다. 사회적 피해의식에서도 아니고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자기가 만난 9명의 연인은 그저 여자를 탐하는 가식적인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녀에게 죄의식이란 찾아볼 수 없다. 호송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콧노래를 부를 만큼.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칠 사람이지만 자세히 보면 괜찮더라. 아영이가 술자리에서 한 말에 꽂혔다. 아영의 통통 튀는 엉뚱한 매력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첫 만남엔 쓰레빠 질질에 추리닝 차림이었지만 이젠 그런 옷 입지 않는다. 적어도 아영 앞에 서기 전엔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보고 나간다. 처음으로 고백이란 걸 해보았던 명환은, 아영이 제일 싫어하는 게 돈 많은 백수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녀의 최악의 스타일이 바로 나라니!
아영이 보기에 착실하고 부지런한 남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이 악물고 공부해 경찰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인 이유는 뭘까.
드라마 보조작가로 서은숙 작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드라마 판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을까? 그곳에서 아영이라는 재능 있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혜는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견디기 힘들고 죽고 싶었던 순간, 일도 사랑도 순식간에 사라진, 남은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든 지혜.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었지만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절박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 정도로 용기가 있지도 않았다. 미련도 많았다. 억울했다.
그 틈을 파고 들어온 남자가 있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위로 했다. 사람들에게 속으며 살았다 생각했지만 이번엔 아니겠지 생각한다. 정말 나를 위하는 사람일거야.
태민은 인류의 고대 문명이 외계인이 지구에 생명의 씨를 뿌려 그들이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이 세상의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일들을 찾는데 심취해 있고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스스로 뿌듯해 한다. 태민에겐 콘텐츠업이 천직이었다. 늘 새로운 이야기들로 넘쳐나니 말이다. 기괴하고 이상한 이야기는 늘 그의 담당이었다. 돈은 안 되고 매니아들만 보는 장르지만 태민의 선구안은 다양성을 확보했다. 팀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이런 호기심 대마왕 태민에게 요즘들어 계속 눈에 띄는 영상이 있다. 바로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어디선가 일어 나고 있다는데.. 아영은 말도 안된다며, 어그로끄는 영상 치우라고 얘기하지만 태민은 이상하게 진짜 같다.
엄청난 활자중독자. 독서량이 어마어마한 탓에 직업만족도는 최상. 느릿한 말투 멍 때리는 표정, 하지만 핵심을 간파하는 노련미. 빠른 눈치가 있다. 가끔 뇌를 거치지 않고 내뱉는 말로 배팀장을 열 받게 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스타일. 그것이 소진만의 시원한 매력 포인트.
그러나 짝사랑 앞에서는 다르다. 태민에게 호감이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와중, 때 마침 우빈의 실종사건으로 태민과 계속 함께하게 되니 데이트 하는 기분이고 좋다.
오로지 성과 하나에 집착한다. 잘 나가는 작가 밀어주고 못하는 작가 쉽게 날려버리는 뼛속까지 성과주의. 타코의 창립 맴버이자 모든 구성원을 직접 뽑았다.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작가는 인간으로 생각도 안한다. 반면 돈 잘 벌어다 주는 작가에겐 무릎 꿇고 구두라도 핥으라면 핥을 수 있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지만 자신의 한계를 단번에 깨닫고 현실주의자가 된 그. 이젠 타코를 대한민국 최고의 컨텐츠 회사로 키우는 것이 인생 목표다.
아영, 지혜와 함께 서은숙 작가 밑에서 함께 보조작가 생활을 했다. 그녀는 모든 일에 무덤덤하다. 욕을 먹어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 아영이나 지혜가 모욕적이라 생각하는 서작가의 폭언에도 덤덤하다. 러시아 유학시절 즐겨 먹던 보드카만 들어가면 동생들에게 말한다. “인생 별거 없어. 그냥 살아. 시바...결국 모든 건 다 흙으로 돌아가잖아.” 아영과 지혜의 고민을 들어주던 큰 언니, 대신 욕먹어주는 방패. 정신적 지주. 10년차 고인물 답게 업계에 떠도는 모든 소문이 그녀를 통해 나간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데뷔를 앞두고 아영과 함께 살고 있다.
20대 후반 데뷔작으로 시청률20%넘긴 촉망받는 드라마 작가였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후로 내는 작품마다 족족 말아먹어 서작가랑 손잡으면 필망 한다는 업계의 소문까지. 성격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화풀이는 온전히 보조작가들의 몫. 작품이 들어갔다 하면 갈리는 보작들이 수두룩. 삽시간에 퍼진 소문 덕에 월급을 올려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은퇴할 거라는 소문에 다들 박수치며 그럴 줄 알았다며 수군거리지만 얄밉게도 잘나가는 의사 남편이 있어 노후걱정은 없다는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