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6:27:28

권무용


성명 권무용(權武容)
이명 권국서(權國瑞)
생몰 1888년 12월 10일 ~ 1927년 10월 20일
출생지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대평리
사망지 경상남도 합천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무용은 1888년 12월 10일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원화(李源華)·전하선(全夏善)·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구재범(具在範) 등과 함께 3월 21일의 초계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한편, 인근부락에 이 계획을 알렸다. 이윽고 3월 21일 오후 1시경, 그는 장터에 모인 4천여명의 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그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군중은 초계우편소에서 인근 일본군과의 통신망을 파괴하고 경찰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시위군중은 이곳에서 주재소를 포위하고 투석과 몽둥이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며 저지하자, 시위군중은 발포한 일본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하였다. 그러나 합천경찰서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 경찰이 현지에 도착, 이곳 경찰과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면서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체포된 그는 1919년 8월 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7년 10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권무용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