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18:02:10

권각

파일:권각.jpg
[1]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사와다(澤田慤)
본관 안동 권씨[2]
출생 1923년 3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 가일마을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3]
사망 1943년 3월 23일
경기도 경성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각은 1923년 3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내수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수동)에 거주했다.

그는 1940년 9월 초순 경성부 조선문화학원(朝鮮文化學院)[4] 중등과 1학년에 재학 중 동급생 손용우·안병구(安秉九)·이동찬(李東燦)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구주대전(歐洲大戰)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일본을 공격할 터이므로 이 기회를 조선독립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은 사실 무근이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페간은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1940년 9월 28일, 그는 손용우·전태현·박래수(朴來洙) 등과 함께 사직공원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 입간판에 대한 독립 만세라고 써 붙였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200일 통산)을 선고받고 같은 달 17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그해 7월 31일 출옥했으나# 1943년 3월 23일 경성부에서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권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40년 12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복야공파.[3] 인근의 갈전리·구호리와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오돈·권오설·권준희·권혁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이 학교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1939년 12월 7일 동아일보 기사경기도 경성부 연지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에 있던 교사(校舍)가 비좁아서 피어선성경학원 교사로 이전했다는 말이 있다. 또 대한민국인물연감에 의하면,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이 조선문화학원을 설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