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궁이양(弓履陽) |
이명 | 궁이순(弓履淳), 김일수(金日洙) |
생몰 | 1876년 ~ 몰년 미상 |
출생지 | 평안남도 개천군 개천면 운양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궁이양은 1876년생이며 평안남도 개천군 개천면 운양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 12월 17일 조용하(趙用河)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을 결성하여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뒤 같은 해 12월 28일 순천군 백낙현, 12월 29일 봉명면장(鳳鳴面長) 김형철(金瑩哲), 1921년 1월 18일 개천군 현기덕(玄基德), 3월 15일 순천군 김관호(金寬鎬)의 집 등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만주 관전현에 소재한 대한독립광복군에 찾아가 국내 사정을 보고했고, 1921년 2월 이웅해(李雄海)로부터 평안도 지방대(地方隊) 참의장(參議長)으로 임명된 뒤 평안도와 황해도에 대한독립청년단의 연락기관을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21년 11월 1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살인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궁이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