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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6:00:33

관상기도


1. 개요2. 관상기도와 일반 기도와의 차이점 3. 이교도 종교예식?4. 하는 법


관상(觀想)기도는 마음의 상[1]을 보는 기도를 뜻한다.

1. 개요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의 상을 보며 침묵으로 기도를 하는 것
기존의 신에게 의지하고 소리내어 부탁하는 일반적인 기도와는 다르게 나를 다시 돌아보고 신에게 감사와 반성 그 이외에 지향기도도 바칠 수 있는 기도이다.

가끔 떼제와 관상기도는 같은것으로 잘못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2010년 들어 한국 개신교가 타락하며 교회가 외적 성장 보다는 내적 성장에 중심을 두자며 여러 목사들에 의해서 국내에 잘 알려졌다.

2. 관상기도와 일반 기도와의 차이점

1) 구송(口誦)기도(vocal prayer). 간청하는 기도, 우리들이 소리를 내거나 마음속으로 소망을 주님께 아뢰든지 간에 말로 주님께 간청하는 기도를 말한다.

2) 명상기도(meditation). 기독교 신자들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큐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경건생활로 행하는 큐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만약 큐티가 끝나고 나서 침묵 가운데 하느님 속에 편히 쉬는 시간을 보내는 관상기도를 한다면 큐티의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3) 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 이 말은 ‘하느님 안에서 쉼’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님과의 일치(communion, 친교, 합일)를 지향한다. 관상 기도를 크게 둘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째는 능동적(active) 관상기도는 신자인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의지력으로 주님께 나아와 기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 관상기도를 한다고 할 때 이 단계의 관상기도를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의지적으로 주님께 지향하며 침묵 가운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2]

3. 이교도 종교예식?

한국의 개신교의 대부분이 생각하는 기도는 방언기도, 통성기도 등 입으로 소리내어 기도하는 기도가 한국의 개신교의 일반적인 기도방식이다.

그러나 소리내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마음의 상을 보는 기도는 불교나 여타 다른 종교의 신비주의적인 해탈과 비슷하다는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개신교에서도 소리내지 않고 하는 기도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가르침 상으로 마음이 청결해지는 것은 하느님을 찾음으로써 하느님과 가까워질 때 가능한 것인데,[3] 자력으로 명상하듯이 마음을 비우는 것은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이기에, 이런 것이 선행되는 관상기도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이다.

1세기 초 부터 기독교신자들은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성독)를 하며 신앙생활을 해왔다. 당시에는 지금같이 성경이 인쇄되지 않아서 흔치 않았기에, 회당에 비치된 성경말씀을 듣기만 했다. 그래서 이들은 첫번째로 말씀을 듣고(Lectio) 두번째는 말씀을 묵상하고(meditatio) 세번째는 이 말씀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고(oratio) 네번째는 말씀과 주님의 현존 안에서 쉼(contemplatio)의 4단계를 거치는 영성생활을 거쳤다고 한다. [4]

개신교 내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은 경계령을 내렸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감리교 등은 이를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국의 보수 장러굪교단과 진보 장로교 교단들의 대형 연합체인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위원회도 주의할 요소가 있지만 장점도 있으며 이단성은 없다고 보았다.

4. 하는 법

기도에 정해진 방식이나 전례가 있는것은 아니나 대중적인 관상기도 방식은 이러하다.
1. 편안하고 조용한 자리에 앉아 편히 숨을 쉬며 안정을 취한다.
2. 내적으로 마음의 촛점을 맞춘다.
3. 마음과 정신이 연결되었을 때 혹은 그렇게 느낄때 정교회의 예수기도를 외운다.[5]
4. 떼제음악 등을 부르며 마친다.

이외에 성경을 읽거나 묵상을 하거나 성경 구절을 외우던 회개기도를 하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우리가 사도신경이나 콘스탄티노플 니케아 신경을 외울때 '성령을 믿으며' 하는 그 성령과의 친교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1] 거울[2] 출처: 뉴스앤조이 관상기도란 무엇인가?[3]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7장 18절)[4] 관상기도를 대중화시킨 토마스 키딩의 책 中[5]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어 우리('우리' 대신에 기도가 필요한 이의 이름을 넣을 수 있다)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