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3-28 10:16:01

곽재관

파일:곽재관.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현풍 곽씨
출생 1920년 4월 8일
경상북도 대구부 남성정
(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사망 2007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516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곽재관은 1920년 4월 8일 경상북도 대구부 남성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구고보(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교토의 입명관 대학교에 유학하여 학업에 전념했다. 그러던 1940년 유학생 동지들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고 조국 독립에 대비하여 실력을 배양하기로 합의한 뒤, 그는 1941년 방학을 이용해 귀향한 뒤 대구사범학교의 문학서클인 '반딧불'을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함양하였다. 그후 각지로 흩어진 동지들과 서신교환 등을 통하여 서로 용기를 복돋아가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1942년 4월 대전에서 형사에게 체포된 그는 장기간의 예심 중 병보석 출옥했지만, 1944년 5월 재판장의 물음에 불경한 말을 했다고 해서 병보석이 취소되고 대전형무소에 재수감되었다. 1944년 7월 27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감옥에서 2년은 재판 없이 투옥됐으며 재판에서는 1년을 선고 받아 총 3년의 옥고를 치렀다. 비참한 투옥 생활로 인해 동상에 걸려 출옥 후에는 의사의 다리 절단 권고까지 받았을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으나 겨우 민간요법으로 회복하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신학을 공부하여 일생을 목사로서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경북 상주에 위치한 상주교회와 영천의 대전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7년 곽재관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3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