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20:11:30

고증식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고증식
본명 고증식
출생 1960년 2월 5일 ([age(1960-02-05)]세)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가족 부모님, 형제[1]
학력 우천중학교 (졸업)
원주고등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 학사)
직업 시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시인.

2. 생애

강원도 횡성에서 아버지 고경모와 어머니 허서운 사이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우천중학교를 거쳐 1978년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고교시절 문학모임을 만들어 동인지 '울림'을 펴내는 등 문학에 관심을 두어 1979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85년 군 제대 후 부산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988년 경남 밀양의 학교법인 밀성학원으로 학교를 옮겨 밀성제일고, 밀성여중,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밀양에 정착하였다. 그해 이재금 시인, 김춘복 소설가 등을 만나 밀양문학회를 창립하고, ‘밀양문학’을 창간하는 등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4년《한민족문학》4집에 '너희들의 교과서' 외 4편의 시 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창비》《실천문학》《문학사상》등의 잡지에 시를 발표하였다. 그해 밀양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전국시낭송대회 실무간사를 맡아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97년 스승 같았던 이재금 시인이 56세의 나이로 타계하신 뒤 ‘이재금추모사업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준비위원장을 맡았으며, 1998년 소설가 이문구 선생을 회장으로 ‘이재금추모사업회’를 발족하여 사무국장을 맡았다. 1999년 추모사업회는 우선 사업으로 밀양강 솔숲에 ‘이재금 시비’를 세우고, 이재금 유고시집『나는 어디 있는가』(실천문학사)를 간행하였다.

2000년 첫시집『환한 저녁』을 실천문학사에서 간행하였다.『환한 저녁』은 우수문학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0년부터 밀양문학회장에 선임되어 2회에 걸쳐 10년 동안 회장을 맡았으며, 2001년 ‘경남작가회의’ 창립에 참여하여 ‘경남작가’ 편집위원,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밀양문학회장으로 있던 2003년에는 밀양 영남루를 배경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제1회 ‘밀양강변문학축제'를 기획하여 각 지역의 문인초청 문학 한마당 잔치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 한국문예진흥원의 개인창작지원금 수혜로 두 번째 시집『단절』(실천문학사)을 상재하였으며, 2005년부터 ‘화요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2010년에는 세 번째 시집 『하루만 더』를 도서출판 ‘애지’에서 간행하였다. 또한 그해 11월부터 2011년 5월까지 국제신문의 ‘아침의 시’ 꼭지를 연재하였으며, 2012년 시평집『아직도 처음이다』(애지)를 간행하였다. 2010년부터는 한국작가회의 회보 편집 위원장을 맡았으며, 2012년부터 한국작가회의 이사로 참여하였다. 2013년에는 하반기 우수문학도서 시분과 선정위원으로(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활동하였으며, 2015년에는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경남신문의 ‘열린포럼’에 칼럼을 연재하였다. 2019년, 네 번째 시집 『얼떨결에』(걷는사람)를 간행하였다. 그해 <현대문학> 7월호에 「그나저나」를 발표, <창비> 겨울호에 「그만 분필을 놓을 때」,「이름값」을 발표하였으며, 시집 『얼떨결에』가 2019 세종도서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

2020년 33년간 몸담았던 학교법인 밀성학원의 밀성고등학교를 명예퇴직하였으며(옥조근정훈장 수여), 2021년부터는 ‘밀양강 시의 거리’ 조성사업의 추진을 맡아 영남루 앞 밀양 강변에 시의 거리를 조성 운영하고 있다.
[1] 4남 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