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KIA 타이거즈의 투수에 대한 내용은 고영창(야구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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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531a2><colcolor=#FFD700> 대발해 초대 황제 高永昌 고영창 | |
시호 | 없음 |
연호 | 융기(隆基) |
성씨 | 고(高) |
휘 | 영창(永昌) |
생몰 | ? ~ 1116년 |
재위 | 1116년 1월 1일 ~ 1116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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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영창(高永昌)은 발해유민이자 발해가 멸망한 후 대발해를 선포하여 대발해의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성씨가 고(高)씨라는 점에서 고구려 왕족의 후손으로 추측된다.[1]2. 행적
2.1. 초기 생애
요나라에서 공봉관(供奉官) 벼슬을 지냈다. 완안아골타가 이끄는 여진족이 거란군을 격파하고 기세를 보이자 1115년 천조제는 고영창에게 발해무용마군(渤海武勇馬軍) 2천명으로 백초곡(白草谷)을 지키게 했다.2.2. 대발해 건국
이듬해인 1116년 1월, 고영창은 10여명을 이끌고 밤에 동경유수 소보선을 살해했다. 고영창은 국호를 대발해, 연호를 융기로 하였고 수도를 동경요양부로 삼았다.거병 이후 발해유민들이 대거 유입되었으며 초반에 맹렬한 기세로 성장하여 거병 10일 만에 요동부의 50여 주를 점령하였고 요나라 황족 야율여도(耶律余賭)도 합류했다.
건국 5개월후인 1116년 5월 요나라가 진압하기 위해 장수 장림(張琳)을 파견했고 고영창은 달불야를 사신으로 보내 금나라에게 구원요청을 했다.
그러나 칭제 문제로 갈등을 빗었고, 대발해는 요나라군과 금나라군 양군의 공격을 받게되었다. 결국 고영창은 금나라의 장군 알로(斡魯)의 군사에게 사로잡혀 목숨을 잃었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발해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고영창의 죽음 후 더 이상의 발해부흥운동은 없었다.
3. 기타
4. 같이보기
[1] 그러나 고구려에는 왕족 외의 고씨도 많았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