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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12:37:31

고경철

파일:고경철.jpg
고경철
高敬鐵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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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제주 고씨
출생 1963년 6월 5일 ([age(1963-06-05)]세)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학력 부평고등학교 (졸업)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 / 학사)
신체 183cm, 99kg
종목 씨름
소속 현대 코끼리 씨름단
시흥시 씨름협회 자문위원
시흥시 씨름협회 전무이사
종교 불교
가족 슬하 1남

1. 개요2. 선수 경력3. 평가4.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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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씨름 선수.

2. 선수 경력

금강급으로 데뷔하여 80Kg대의 체중으로도 무제한급 왕중왕 토너먼트인 천하장사 결선에 올라 거인 이봉걸을 꺾으며, 체급의 한계를 넘는 화려한 기술 씨름과 뛰어난 외모로 미남 장사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금강급의 무적으로 군림하던 손상주의 벽에 막혀 금강장사는 한번도 차지하지 못하고[1] 한라급을 건너뛰어 백두급으로 진출하게 된다. 백두급에서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빅3 바로 아래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백두장사 6회를 차지하였다.[2] 번번이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의 벽 앞에서 천하장사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고 4회 연속 4강진출에 3위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89년 선수 생활이 황혼기에 접어드는 시점에 불꽃을 태워 사상 처음으로 천하장사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이때도 황제 이만기에게 패해 결국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던 비운의 선수이다.[3]

3. 평가

1980년대 씨름계의 인기 스타들 중 한 명으로, 체격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술로 자기보다 큰 덩치의 상대를 꺾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4] 다리 기술의 달인으로 불릴만큼 안다리, 바깥다리 걸기가 유명했고, 그중에서도 안다리 기술이 특히 일품이다. 고작 85kg에 불과하던 금강급 시절에도 천하장사 토너먼트에서 백두급 선수들을 연달아 격파하고 5, 6위 전에서 거인 이봉걸을 멋들어진 안다리 걸기로 쓰러뜨리며 5위에 올라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기를 10초 이내로 끝내는 스피디하고 다이나믹한 기술 씨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금강급에서는 매번 손상주의 벽에 가로막혀 단 한번의 우승도 하지 못했고, 백두급으로 월장한 이후에는 이만기, 이봉걸, 이준희의 그늘에 가려 천하장사 문턱에서 매번 좌절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4. 은퇴 이후

한보그룹 멧돼지 씨름단에 코치로 활동하였다. 이후 식당과 노래방도 운영하였다. 현재 동문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몇년 동안 고깃집을 운영했으나 2022년부터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

야구선수 김동기와는 인하대학교 동기이다.(1982학번)

[1] 금강장사 결승에 진출한 4번 모두 손상주에게 패해 준우승만 4번이다. 손상주는 금강급에서 적수가 없자 한라급으로 월장하였으며, 체급의 한계를 넘어 한라장사의 위치로 천하장사에 도전하여 무려 3회 연속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준희이만기의 벽을 넘지 못해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고경철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손상주도 이만기와 이준희의 벽을 넘지 못했다.[2] 백두장사 6번의 타이틀은 1980년대 당시 이만기, 이준희 선수에 이은 3번째 기록이었다.[3] 다만 정규 천하장사에는 한번도 등극하지 못했으나, 1988 서울 올림픽 기념 특별대회로 개최한 올림픽 천하장사에서 마침내 이만기를 꺾고 결승에 올라가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13844_19338.html우승했다.[4] 백두급에서 가장 가벼운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다리 기술과 스피드로 백두급을 제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