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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6 20:21:40

얼굴무늬 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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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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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慶州 人面文 圓瓦當
파일:얼굴무늬 수막새.jpg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수량/면적 1점
지정연도 2018년 11월 27일
제작시기 신라
파일:얼굴무늬 수막새 전후면.png
수막새의 전면과 후면 음영 강조 사진.
1. 개요2. 오늘날의 쓰임3. 외부 링크4. 보물 제20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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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얼굴무늬 수막새 또는 인면문 수막새신라 시대의 기와 유물이다. 수막새란 목조건물의 처마 끝에 있는 무늬기와로, 이 수막새는 본래 신라시대 영묘사의 한 건물에 장식되었던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정동 영묘사지에서 출토되었다. 오랫동안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도 아니었는데, 인상적인 푸근한 미소 덕분에 대중들의 인지도는 대단히 높았던 유물이다. 일명 신라의 미소 혹은 천년의 미소신라 또는 경주시 그 자체를 상징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후 대중적 관심도에 힘입어 2018년 11월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되었다. #

본래 일제강점기에 경주 야마구치 의원에 근무하던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 1905-1993)가 골동품 가게에서 가치를 알아보고 고가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광복 이후 여러 차례 설득 끝에 1972년 10월 국립경주박물관에 아무 보상 없이 기증해서 돌아온 환수 문화재의 모범적 사례이다.

단순한 조형이지만 미소 지을 때의 눈과 주름의 모양을 잘 잡아내었다.( ͡° ͜ʖ ͡°) 둥근 수막새는 연꽃 무늬로 꾸미는 것이 보통인데, 이건 특이하게 사람 표정을 넣었다. 아래쪽이 부서졌는데, 동그란 기와 형태가 멀쩡했다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이렇게 유명해지지는 않았을 듯하다.[1]

장식기와에 인면문을 새기는 기법은 의외로 신라에서 나름대로 성행하던 기법일 수도 있다. 그 예로 황룡사에서 발굴된 치미에는 작은 얼굴무늬가 여럿 있다.

2. 오늘날의 쓰임

조선일보. 밀리미터까지 계산하는 로고에 담긴 비밀}}}

3. 외부 링크

4.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라고 널리 소개된 신라시대 원와당(圓瓦當)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沙正里, 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하여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일반적인 와당 조성방법처럼 틀(瓦范)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와범으로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련된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실제 사용한 흔적도 있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루며 신라인들의 염원과 이상향을 구현한 듯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손으로 빚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서, 당시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1] 고대 그리스조각 밀로의 비너스가 두 팔이 떨어져 나가서 더 눈에 띄는 것과 마찬가지다.[2] 이디야커피 국립경주박물관점에서 시그니처 메뉴로 수막새 마들렌과 월지차(茶)를 판매하고 있다. 마들렌은 쑥과 흑임자 두 가지 맛.[3] 미국의 CI 전문 회사로 삼성그룹의 CI도 이곳에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