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의 보루

서리로 덮인 거대한 전신 방패는 잉그위스 양식과 웬딩 화이트의 양식이 결합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길고 볼록한 표면에서 극심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동상체가 나타난 건 첫눈이 막 내리던 때였다. 그때, 우리는 막 작살꾼들이 갖은 고생을 하며 잡아 온 대물, 올 어획 철 마지막 고래를 두고 축제를 벌이고 있던 참이었다. 고기와 비계를 썩둑 썩둑 넉넉하게 잘라 소금을 잔뜩 뿌린 다음, 살짝 튀긴 뒤 숙성을 해뒀다. 열심히 일하고 먹으며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고래의 희생에 감사하고, 고래가 영혼의 바다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 높여 영혼을 달래는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잘 먹어댔는지! 또 잔뜩 마셔댔는지!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컸던지! 그러나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도 잦아 들어갔다. 우리들의 영혼도 마찬가지였다. 첫 서리와 함께 뿔달린 짐승이 나타났고 그 발굽 자국 자국마다 짐승의 자식들이 태어났다.

먼저 사라진 것은 실루크였다. 며칠 동안 눈이 내렸지만 불 짐승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에, 혹자는 좋은 해가 될 징조라며 수군댔다. 그 말인 즉슨 우리가 북쪽으로 가면서도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긴장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루크는 사라졌다. 아무도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실루크는 사냥을 떠나려 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사라질 생각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분명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냥꾼 푸니키 보다 앞장서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푸니키는 하필이면 흰 바람이 부는 찰나의 순간, 그를 놓치고 말았다. 흰 바람이 가라앉아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흔적도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길을 내기 위해 치워둔 눈이 돌처럼 단단해져 있을 뿐이었다.

돌아왔을 때, 아무도 나를 미쳤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라고 욕하지도 않았다. 처음에 조용히 사라졌던 것처럼 세 명이 더 사라졌으니까. 우리가 본 거라곤 동상체 뿐이었다. 수척하고 새하얗게 질렸으며 얼굴에 난 구멍마다는 얼어붙은 피가 엉겨붙어있던 그 시체들을.

우리는 고둥 바위 벌판에 도착했을 때 사방으로 정찰대를 보냈으며 나는 서쪽 바위 방향으로 활가 도끼를 들고 나아갔다. 이쪽 길이 안전하다든지 위험하다든지 소식을 갖고 오든가 아니면 돌아외 못하든가 하겠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든 나는 에누타닉을 섬기리라.

우리가 족장의 땋은 머리라 불리는 무너질듯한 바위들, 나는 그 너머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하얀 나머지 눈과 같았고, 태양이 그 뒤에 떠서 오렌지와 보랏빛으로 그것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더니 소나무 사이로 떠올랐는데 그 키가 얼마나 큰지 제일 기다란 나무도 어깨에 닿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짐승의 뿔이 구름을 가르고 꿰뚫자 그 틈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인 줄 알았던 것은 동상체였고 동상체는 얼음처럼 길쭉하고 날카로운 다리부터 팔랑팔랑 눈발처럼 내려왔다. 그 앙상한 손에는 서리에 뒤덮인 창과 방패가 들려 있었다.

나는 주저할 새도 없이 도망쳤다. 우리는 동쪽으로 가야 한다. 서쪽엔 종말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