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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8:18:18

강표영



1. 개요2. 생애3. 경력

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1950년 출생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 10월 8일, 최고사령관 명령 0065호에 따라 소장으로 진급, 장령이 되었다. 1997년 4월 1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88호에 따라 중장으로 진급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2002년 10월, 조선인민군 친선참관단장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하지만 일처리가 시원찮았는지 사고를 친 것인지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탈락하였으며 이후 수년간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다가 2010년 1월, 1군단장 임명이 확인되었으며,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2년 5월 8일, 고위군사대표단장으로 라오스로 출국하는 리영호를 인민무력부 부부장 자격으로 전송하면서 인민무력부 부부장 임명이 확인되었다. 2012년 9월 11일, 조선인민군 군사대표단장으로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다. 2012년 10월 24일,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 준공식에 보건상 최창식, 국제부 부부장 김성남, 외무성 부상 김형준과 함께 참석했다. 다음날인 10월 25일, 중공군 참전 62주년을 기념하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영대, 최창식, 김성남, 인민보안부 부부장 한남철, 김형준과 함께 화환을 진정하였다. 이후 은근슬쩍 상장으로 진급하였다.

2013년 2월 12일, 김정일 탄생 경축 백두산밀영결의대회에 김기남, 김영춘과 함께 참석하여 "총대를 틀어쥐시고 애국애민의 의지로 한몸을 깡그리 불태우시며 불패의 군력과 일심단결의 힘을 마련해주신 어버이장군님의 혁명업적은 천추만대에 빛날것"이라고 발언했다. 2월 16일,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동행했다. 4월 18일, 조선인민군 대표단장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7월 25일, 인민무력부에서 6.25 '승전' 60주년 연회를 마련하면서 인민무력부장 장정남과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8월 1일, 중국대사관 국방무관 장평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했다. 8월 14일, 러시아 대사관에서 연 해방 68주년 연회에 철도상 전길수, 외무성 부상 궁석웅,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 서호원과 참석했다. 10월 25일, 양형섭, 보건상 강하국, 김성남, 인민보안부 부부장 김승범, 김형준,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 김진범과 함께 우의탑에 화환을 진정하였다. 2014년 2월 12일, 2월 20일, 러시아 대사관 연회에 참석했다. 장정남, 최태복, 곽범기와 함께 백두산밀영결의대회에 참석, 김정일 숭상 발언을 하였다. 7월 6일, 김일성 사망 20주기 인민무력부 위대성발표회에 참석하였다. 2015년 9월, 박영식, 렴철성과 함께 라선시피해복구전투 지휘사령부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라선시 복구에 투입되었으며, 김정은의 라선시 현지지도를 수행하였다. 10월, 김정은의 라선시 선봉직 백학동 현지지도를 다시 수행하였다.

하지만 고령이 문제였는지,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탈락하였다. 다만 2016년 9월, 인민무력성 군인궐기모임에 참석하여 결의토론을 하였으며, 2016년 10월 14일자 로동신문 기사 "1 700여세대의 살림집골조공사 결속회령시피해복구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부대들에서"에서 회령시피해복구 인민무력성 현장책임일군으로 소개, "세상에 없는 복구기적을 창조하여 북변땅 인민들에게 반드시 더 큰 행복,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생활을 안겨주려는 당의 결심과 의도를 앞장서 실현할 억센 의지를 안고 공사시작부터 통이 크게 작전하고 완강하게 밀고나갔다. 모든 지휘관, 군인들이 큰물피해복구전투의 가장 힘겨운 대상, 제일 어려운 과제를 인민군대에 맡겨준 당의 크나큰 믿음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일심단결옹위전을 과감히 벌려나가도록 선전선동력량과 수단을 총동원, 총집중하여 화선식정치사업을 힘있게 전개하였다."라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아무런 활동이 확인되지 않는데,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도 강표영이 있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강표영 외에는 다른 강표영이 북한 매체에 보도된 적이 없으니 동일인물로 여겨지는데, 당중앙위원회에는 선거되지 않은 것을 보아서 은퇴 후 예우성 대의원 선거가 아닐까 추정된다.

3.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