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강정태(姜正泰) |
생몰 | 1896년 3월 13일 ~ 1963년 12월 14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 |
사망지 | 전라남도 완도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정태는 1896년 3월 13일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목포상업전수학교를 수료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3월 15일 향리에서 송대호, 정남국 등 동지들과 함께 수백명의 군중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그는 완도군 소안면에서 배달청년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추대되어 군내 각종 청년단체와 노동단체를 통합하여 완도청년연합회와 완도노동연합회를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들의 간부로 선임되어 농민운동에 전념했으며, 1926년 6월 15일에는 소안면 미라리에서 농민운동의 일환으로 살자회를 조직하여 소작쟁의를 계획했다.그러나 소작쟁의 실행 직전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0년 3월 31일 공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으며, 대구복심법원에서 칙령 제7호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한의원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1963년 12월 14일에 완도군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강정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