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21 07:47:05

갑진북정록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40호

1. 개요

甲辰北征錄.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현종 5년인 1664년에 함경도 지방을 여행하며 지은 시들을 모아놓은 시문집. 현재 대전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숙종영의정을 지냈던 김수항이 1664년 7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간 북방 지역을 여행하며 지은 76수의 친필 시들을 1715년에 그의 맏아들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이 엮어 만든 것이다.

김수항이 평생 저술한 작품들을 모아놓은 문집인 28권 14책의 문곡집에도 이 책의 내용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1/3가량은 빠져 있으며, 당대 변려문의 제일인자로 손꼽혔던 김수항이 직접 여행 도중 붓으로 써내려간 친필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3. 외부 링크

4.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40호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곡 김수항(1629∼1689)이 지은 글을, 숙종 41년(1715)에 그의 맏아들인 김창집(1648∼1722)이 편찬한 시첩이다.

김수항은 효종 2년(165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병조좌랑,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1662년에는 임금의 특명으로 예조판서가 되었고, 그후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나이 44세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그후 영의정이 되어서는 남인의 죄를 물었으나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권력을 잡자 그들의 모함으로 인해 사약을 받고 죽었다. 한때 사림의 종주로 추대되기도 했던 김수항은 시문에 뛰어나 당대 변려문의 제일인자로 손꼽혔으며, 전서, 해서, 초서체에 모두 능한 인물이었다. 전국의 여러 서원에서 그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며, 시호는 ‘문충’이다.

김창집은 숙종 때의 문신이며, 시호는 ‘충헌’이다.

이 책의 내용은『문곡집』에 수록되어 있으나 1/3가량은 빠져 있다. 그것은 이 책이『문곡집』을 간행한 후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김수항이 현종 5년(1664) 윤 7월부터 10월 사이에 함경도 지방을 여행하면서 지은 한시 76수가 수록되었다. 책의 크기는 가로 32.8㎝, 세로 38.2㎝이며, 1책 50장 10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