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제르바이잔의 도시
자세한 내용은 간자 문서 참고하십시오.2. 간체자의 준말
자세한 내용은 간체자 문서 참고하십시오.3. 대마초를 이르는 말
힌디어 गांजा우르두어 گانجا
태국어 กัญชา
영어 Ganja
산스크리트어로 대마초를 이르는 간자에서 유래된 말로, 19세기 인도를 지배한 영국에 의해 처음 유럽에 알려졌다. 그리고 인도 노동자들을 통해 자메이카 등 영국령 카리브 연안 및 동남아에도 유입되었다.
4. 間者
첩자와 비슷한 말로, 적 나라에 침입하여 정보를 빼내는 사람.5. 慳者
구두쇠, 또는 잔인하고 간악한 사람을 일컫는 말.6. 숟가락
어른의 숟가락을 높여 이르는 말로, 곱고 두꺼운 숟가락을 아울러 이른다.7. 불교 용어
簡子좁은 의미로는 불교에서 점찰(占察)에 사용되는 문자가 기록된 패쪽을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미륵보살의 수계를 의미하는 징표를 가리킨다.
점찰이라는 건 한자로 써놨지만 쉽게 말해서 점 친다는 뜻이다. 간자는 점찰의례에서 점 치는 데에 쓰이는 도구다. 점찰의례에서 간자의 소재는 종이, 조개껍질, 가죽, 대나무, 침단목, 뼈 등 다양한데, 한국의 점찰법에서는 주로 침단목을 썼고, 현대에 이르러 복원시킨 일부의 사례에서 싸리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근본 경전은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상하 전2권)으로, 수대 보리등(菩提登)에 의해 번역되었다는데, 상권은 목륜상(木輪相)으로 숙세(宿世)의 선악의 업과 현세(現世)의 길흉 등을 점찰하는 법을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대승(大乘)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갈고 닦아야 할 신해(信解)로서 진여실관(眞如實觀)과 심유식관(心唯識觀)이 설해져 있다.
이 경에 의한 점찰법은 수초 중국 남부 금릉 지방 등에서 행해지다가 당대에 들어와 크게 유행하였다. 다른 이름으로는 지장보살업보경(地藏菩薩業報經), 대승실의경(大乘實義經)이라고도 불리며, 다른 경전에 없는 특이한 참법이나 목륜상의 점찰법, 그리고 경전의 성립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법상종의 개조인 진표가 점찰선악업보경의 가르침에 따라 참회법(懺悔法)을 닦아 지장보살로부터 정계(淨戒)를 받고, 미륵보살에게서 제8간자와 제9간자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미륵보살은 진표에게 간자를 주면서 "이건 내 손가락 뼈다"라고 했다는데, 제8간자와 제9간자는 육륜상(六輪相)의 점찰법에 의해 관찰할 수 있는 189종의 선악과보차별지상(善惡果報差別之相) 중 제8의 '받고자 원하면 바로 묘계를 얻는 것'인 소욕수득묘계(所欲受得妙戒), 제9의 '일찍이 받았던 구족계(具足戒)를 다시 얻는 것'인 소회수득구계(所會受得具戒)를 의미하며, 이것은 미륵보살로부터의 수계를 상징한다.
두 개의 간자는 각각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의 2각(二覺)을 비유한 것이고, 제9간자는 본질 그 자체로서 법이(法爾)를, 제8간자는 후천적인 정신작용에 의해서 성불의 새로운 종자를 만드는 신훈성불종자(新熏成佛種子)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두 간자는 진표가 그의 제자로 속리산 길상사의 개창자인 영심(永深)에게 전했고, 영심은 다시 팔공산 동화사의 개창자 심지(心地)에게 전하여 신라 법상종의 사자상승(師子相承)의 징표로 삼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심지가 영심으로부터 전달받은 두 개의 간자를 팔공산 산꼭대기에서 서쪽을 향해 던졌는데, 간자는 어느 숲의 우물 속에서 발견되었고, 심지는 그 땅에 강당을 지어 간자를 안치하였다. 이것이 동화사의 유래이다.
이후 고려 예종이 한번 동화사의 간자를 개경의 대궐로 가져오게 해서 대궐에서 법회를 열어 공경했는데, 그때 두 개 중에 하나(제9간자)를 잃어버려서 상아로 모조품을 만들어서 동화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무렵까지 전해지고 있었는데 색이 변해서 어느 것이 예종이 만들게 한 새 간자이고 어느 것이 원래 있던 오래된 간자인지를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전해지지도 않는다.
간자를 만드는 재료가 목재임에도 불구하고, 명칭에 대나무를 뜻하는 ‘간(簡)’이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것은 간자의 원형이 대나무로 만든 죽간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첨점(籤占)은 초기에는 대쪽이나 나무 혹은 조개껍질로 만든 첨, 가죽으로 만든 첩자(帖子) 등을 사용하다가 제지술이 발달한 당 · 송대에 이르러 종이로 만든 첨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와 점술의 융합 형태로 이루어지는 고대, 중세시대의 점찰법은 엄밀하게 말해 불교에서는 금지된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는 점찰법이 거의 단절된 반면에, 중화권이나 일본의 사원에서는 이전보다 더 성행했다. '의례' 차원에서 보면, 동아시아 불교에서의 간자와 첨은 민간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교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형과 확장의 현상이 나타나는 보편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