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 라틴어: Gaius Fabius Pictor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마르쿠스 파비우스(아버지)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아들)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픽토르(아들)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손자) |
직업 | 로마 공화국 화가 |
1. 개요
로마 공화국의 화가.2. 생애
로마 공화국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파비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기원전 307년, 집정관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는 지난 날 개선식을 거행헀을 때 개인의 건강과 국가의 번영을 책임지는 살루스(Salus) 여신을 위한 사원을 건설하겠다고 맹세한 걸 지키기 위해 퀴리날레 언덕에서 살루스 신전 건설에 착수했다. 공사는 3년 만인 기원전 304년 완공되었다.이때 가이우스 파비우스는 이 신전을 프레스코화로 장식하고 그 아래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는 이 때문에 "픽토르(Pictor: 화가)"라는 코그노멘으로 일컬어졌다. 많은 현대 학자들은 이 그림의 주제는 부불쿠스가 삼니움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묘사한 그림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 벽화는 클라우디우스 1세 통치 기간에 발생한 화재로 살루스 신전이 파괴될 때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두 아들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와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픽토르는 각각 기원전 269년과 기원전 266년에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손자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는 로마 공화국 최초의 역사가로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