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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0:38:26

가노 지고로

가노 지고로
嘉納治五郞 | Kanō Jigorō
파일:jigoro_kano.jpg
이름 가노 지고로
嘉納治五郞
본명 가노 신스께
嘉納新助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출생 1860년 12월 9일
효고갱 무꼬군 미카게초 하마시가시
(現 효고현 고베시 히가시나다구 미카게)
사망 1939년 5월 4일 (향년 78세)[1]
학력 동경외국어대학
관립도쿄개성학교(동경개성학교)
도쿄대학 정치학, 철학 학사
직업 유도인, 대학 교수, 문부 관료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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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군가보다 더 나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은 것이 중요합니다.
가노 지고로
파일:가노 지고로-맨손 조르기.jpg
맨손조르기를 시전하는 가노 지고로

근현대 유도의 창시자.

일본유술을 기초로 근대유도를 창시했다. 그의 도장 강도관을 설립함과 동시에 근대유도를 창시하였으며 아시아인 최초의 IOC위원 및 일본 체육 협회 설립, 초대 회장이었다. 일본에서는 「유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또 「일본의 체육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2. 생애

1860년 12월 9일 가노지로사꾸마레시가의 3남으로 효고겡 무꼬군 미가게초 하마시가시에서 태어났다.그 어렸을때의 이름은 신스께였다.

14살때에는 이꾸에이 즈꾸(학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즈꾸는 네델란드사람이 선생이었고, 독일사람이 조교였으며, 모든 학과는 영어로서 진행되었다. 가노 지고로는 이전에 미즈꾸리 슈헤이의 즈꾸에 다닐 때 어느정도의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학과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당시에 그들사이에 강한 사람이 인정을 받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신체가 작았던 가노로서는 여러모로 불리하였다.

학문에서는 타인에게 지지않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소외당한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을 지니고 있어 자신을 강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였다

18살때 동경대학에 입학당시 언뜻 정복술을 하는 사람이 유술가로서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정복이나 접골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직접 들어가 유술을 한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며 찾아 다녔다.

대학 다니는 동안 유술 선생을 찾아다녔는데, 처음에는 정골사(正骨師)[2]라고 불리는 대체의학 의사들을 찾아다녔는데, 무술을 아는 대체의학 의사들이 더 나은 스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텐진신요류 유술을 배우게 되었고 가노의 스승인 정골사는 자신의 진료소 옆의 작은 공간에서 유술을 가르쳤다. 가노는 대련에서 유술 선배를 이기기 어려워 했고, 이 과정에서 경쟁 상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술들을 시도 했다. 처음에는 전 스모 선수에게 배운 스모 기술을 사용했지만 효과가 없자 서양의 캐치 레슬링에 관한 책에서[3] 배운 메어넘기기(fireman's carry)를 사용 했더니 효과가 있었다.[4]

이렇게 열심히 한 덕분으로 기량은 더욱더 늘게 되어 메이지 12년 미국의 전대통령인 글랜트 대통령이 왔을 때 시부자와에이이찌 라는 사람에게 초대되어 이소 마사토모, 후꾸다 야스께와 그밖의 유술 명가와 함께 아스까야마에 있던 시부와자별장에서 유술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그때 당시 손에 꼽히는 유술가라는걸 알 수 있다.

3. 여담

그가 만든 유도가 삼보,[5] 시스테마, 크라브 마가, 미 육군 격투술 컴뱃티브(Combatives), 미 해병대 격투술 MCMAP(Marine Corps Martial Arts Program) 같은 군용무술브라질리언 주짓수 등 다양한 무술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대동류 합기유술 또한 아이키도합기도의 기반이 되었다.


[1] 카이로 IOC 총회후 귀국 도중 폐렴으로 사망[2]유도정복술[3] 캐치 레슬링이 당시 미국에서 인기였고, 실제로 수년간 세계 캐치 레슬링 라이트급 우승자 애드 산텔(Ad Santel)이 일본에 와서 강도관 유도가들과 대결 하기도 한다. 가노 지고로 시절에는 그레코로만이나 자유형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다. 올림픽에서 안전성 문제로 관절기, 조르기를 뺀 그레코로만, 자유형이 된 것이다.[4] 이 기술을 유도 기술에 어깨로 메치기라고 남아 있으니 현재 올림픽 금지 기술이다.[5] 정확히는 러시아에서 수련되던 유도가 정치적 이유로 변화한 것이 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