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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1982년

1982년 KBO 리그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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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982년 3월 27일~1982년 10월 14일
참가 구단 OB 베어스,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 롯데 자이언츠

1. 개요2. 경기 일정3. 중계 방송
3.1. 정규시즌 중 중계 방송 경기
4. 2차지명 드래프트5. 신인 드래프트6. 정규시즌 최종순위7. 시즌 최종과 시즌 마감
7.1. 정규 시즌 기록 1위
7.1.1. 타자, 공격7.1.2. 투수, 수비
8. 포스트시즌9. 구단별 시즌 기록

1. 개요

파일:external/www.segye.com/20110913001942_0.jpg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야구선수권대회 개막식

1982년에 열린 프로야구 원년 시즌.

팀당 80경기씩 240경기가 열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와 함께 시작된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첫 선발은 이길환[1], 첫 타자는 천보성이었으며, 제1구를 친 것이 내야 플라이로 아웃된 것이 역사적인 첫 개막전의 첫 승부였다. 첫 안타와 타점은 삼성의 이만수가, 첫 홈런도 이만수가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MBC의 이종도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MBC가 첫 승을 기록했고[2] 첫 승리투수는 유종겸이었다.

원년답게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졌는데 OB의 박철순이 22연승을 거두고, MBC의 백인천이 4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해태의 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며 3할 타율에 13홈런, 10승을 기록[3]하는 등의 진기록이 세워졌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해당 문서 내용에서 보듯 국가대표 출신 한 명 없는 철저히 무명 선수들로만 구성된 약체 팀으로[4] 1982년 1할대 승률이라는 세계 야구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다.

1.1.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원년 개막전

한국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3.27(토) 14:30 ~ 18:27 | 동대문야구장
관중 : 30,000명 (매진) | 경기 진행 시간 : 3시간 57분
선발 1 2 3 4 5 6 7 8 9 10 R H E B
삼성 황규봉 2 3 0 0 1 1 0 0 0 0 7 10 2 11
MBC 이길환 0 1 0 1 1 1 3 0 0 4X 11 16 3 3
W: 유종겸 | L: 이선희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0-1984).svg | 캐스터 : 이장우, 최희선[5][6] | 해설위원 : 이호헌[7]
파일:MBC 로고(1981-1985).svg | 캐스터 : 김용 | 해설위원 : 배성서 | 리포터: 고창근

원년 개막전의 매치업은 당시 최고의 팜으로 불렸던 대구·경북팜의 우월함을 앞세워 당대 최고의 스타군단으로 군림하던 삼성 라이온즈와 일본에서 타격왕을 거머쥐었던 백인천 감독 겸 선수를 앞세운 서울 연고팀 MBC 청룡으로 정해졌다.

이날 경기 시구는 전술했다시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했는데 이 당시 대통령의 그라운드 입장 장면을 보면 같이 들어오는 유니폼 차림의 선수들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진짜 선수가 아니라 대통령경호실 소속 경호관이었다.[8]

이 경기는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의 압도적 우세였다. 1회초 함학수의 타구를 MBC 1루수 김용윤이 놓치면서 2사 2루가 됐고 다음 타자 이만수가 좌익선상으로 흐르는 2루타를 터뜨리며 선취 득점에 성공한다. 이 2루타는 KBO 리그 통산 1호 안타 겸 1호 장타 겸 1호 타점 기록이 됐고 함학수KBO 리그 통산 1호 득점자가 됐다. 이어지는 공격에서 송진호가 친 뜬공 타구를 MBC 유격수 정영기가 놓치면서 2루에 있던 이만수가 득점해 2:0으로 앞서간다.

2회에도 선두타자 김한근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정구왕이 우익수 키를 넘는 3루타를 터뜨리며 3:0이 됐고 배대웅의 후속타로 한 점을 더 달아나 4:0이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에서 함학수가 친 내야 땅볼을 MBC 2루수 조호가 악송구한 사이 배대웅이 홈으로 들어와 무려 5:0이 된다. 또 이 이닝에서 이길환이 4번타자 이만수 타석 때 보크를 범해 통산 1호 보크 기록자가 되었다.

물론, MBC도 추격에 들어갔는데 2회말 2아웃 1, 3루 상황에서 정영기가 우전 적시타를 치며 한 점을 추격했고 4회에도 1점을 내 야금야금 추격하게 된다.

5:2 상황이 된 5회초 공격 때 선두타자로 이만수가 볼카운트 3B-1S 상황에서 MBC 투수 유종겸의 몸쪽 높은 볼을 그대로 당겨쳐 서울운동장 야구장 좌측 담장을 넘는 솔로 홈런을 터뜨린다.[9] 이로써 이만수KBO 리그 통산 1호 안타, 1호 장타(2루타), 1호 홈런, 1호 타점을 한 경기에 기록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보유자가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MBC가 맹렬히 추격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5회에 1점을 더 낸 MBC는 6회말 선두타자 백인천이 초구를 받아쳐 중월 담장을 넘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3점차로 바짝 뒤를 쫓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7회. 2아웃 후 송영운이 출루한 후 김용달이 안타를 터뜨리며 2아웃 1, 3루 상황이 됐다. 타석에 들어선 이는 실업야구의 강타자였던 유승안. 유승안황규봉의 초구를 그대로 밀어쳐 우측 담장을 넘는 동점 3점 홈런을 터뜨렸다. 7회 7:7 동률을 이룬 양 팀은 8회와 9회를 득점 없이 보내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연장 10회말 공격에 들어선 MBC는 선두타자 김인식몸에 맞는 볼을 맞고 나가면서 역전주자를 내게 된다. 이어진 대타 김용운은 삼진을 당했지만 다음 타자 김용달의 좌전안타 때 김인식이 1루에서 3루까지 전력질주하는 공격적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고, 그 사이 김용달도 2루에 안착하면서 상황은 1아웃 2, 3루. 타석에는 7회 동점 쓰리런의 주인공 유승안. 외야 플라이만 쳐도 경기는 MBC가 이기기 때문에 삼성의 이선희-이만수 배터리는 유승안을 거르고 만루를 채운 뒤 다음 타자와 승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삼성 배터리는 작전대로 3볼까지 스트레이트로 볼을 뺐는데...

난데없이 유승안이 네 번째 공을 쳐버리더니 이 볼이 투수 앞 땅볼이 됐다. 치는 순간 홈으로 들어온 김인식은 태그아웃. 김인식은 홈에 들어오는 순간 손가락질을 하며 "아! 왜 친거야 진짜"라고 푸념을 하며 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말하길 유승안이 그 상황에서 볼을 쳐버린 것은 개막전 MVP에게 주어지는 경품이었던 오토바이에 눈이 멀어서 그랬다고, 그래서 상황은 2아웃 1, 3루. 다음 타자는 6회 솔로 홈런을 친 백인천. 삼성 배터리는 백인천도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고의사구로 그를 거르고 다음 타자인 이종도와 승부하기로 했다.
쳤습니다! 홈런성입니다! 홈런~됐습니다! 굿바이 만루홈런! 굿바이 홈런~ 이종도!! 이종도 굿바이 홈런~! 아~ 극적입니다!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 당시 MBC 김용 캐스터의 멘트
아~ 레프트! 레프트 크다! 레프트, 레프트, 레프트! 홈~런! 만루홈런~! 11 대...7. 이 극적인 장면을... 이건 야구 관람하는 팬 여러분도 이런 경기는 처음 구경하실 겁니다, 아마.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 당시 KBS 이장우 캐스터의 멘트[10]

2아웃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종도는 2B-0S 상황에서 한가운데에서 몸쪽으로 살짝 빠진 공을 그대로 당겨쳐 좌측 담장을 살짝 넘기는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한다. 이 만루홈런에 힘입어 MBC가 11:7로 승리를 거두게 됐고 승장이 된 백인천 감독은 언론 인터뷰 때 일본에서 당했던 서러움이 폭발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승부를 바탕으로 한국프로야구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2. 경기 일정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뉘어 한 팀이 각각 40경기, 총 80경기를 치렀고,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고정적으로 경기가 편성되고 가끔씩 목요일 경기도 편성되어 주 3~4회 경기를 진행하였다. 다만 해당 시즌에는 기존 구장들의 보수 공사가 지연되면서 OB 베어스가 4월 홈 경기를 원래 연고지인 대전이 아닌 청주에서 치러야 했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전기리그에는 구장 보수 공사, 후기리그에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때문에 홈 구장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홈 경기를 갖는 등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 외에도 프로야구 홍보를 위해 지방 연고 구단이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홈 경기를 갖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야간 경기의 경우, 각 구장의 조명 설치 및 보수 공사가 지연되면서 한동안 낮 경기만 치뤄지다가 5월 20일[11]을 기해 서울 한정으로 평일 야간 경기가 진행되었고, 6월까지 지방 구장의 조명 설비 구축을 마무리하여 후기리그에는 전 구장에서 야간 경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3. 중계 방송

1982년 당시에는 KBSMBC 외에 스포츠 중계가 가능한 방송국이 없었기 때문에 양사의 TV[12]와 라디오 채널[13]을 통해 프로야구 경기가 생중계되었고, 특히 MBC는 TV를 통해 자사 구단의 거의 전 경기를 생중계했다. 다만 이 때부터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끊는 일이 비일비재해 야구팬들로부터 볼멘 소리를 들어야 했고, 일부 야간 경기의 경우에는 정규방송 관계로 경기가 시작된 지 1시간 이상 지난 후에야 중계에 들어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14]

당시 KBS와 MBC 중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팀명을 부르는 방식이었다. KBS는 라이벌 방송사 구단인 MBC 청룡을 의식해서인지 기업명이 아닌 베어스, 라이온즈 등 뒤에 붙은 팀명을 약칭으로 삼았고, MBC는 '기업들이 야구단을 통해 홍보를 진행하려는 의도를 반영해줘야 한다'라는 허구연 해설위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OB, 삼성 등 앞에 있는 기업명을 약칭으로 불렀다. 단, MBC 청룡에 한해서는 양사 모두 '청룡'을 약칭으로 사용했다.

3.1. 정규시즌 중 중계 방송 경기

4. 2차지명 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82년/드래프트
프로야구 출범이 결정되고 개막을 앞둔 1982년 초에 대다수의 팀이 선수 영입을 마쳤으나, 팀간 전력 불균등 등의 이유로 1982년 2월 13일연고지에 관계 없는 2차 지명을 실시했다. OB 베어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5개팀만 지명했다.

5.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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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규시즌 최종순위

<rowcolor=#ffffff,#ffffff> 순위 경기수 게임차 승률 비고
전기리그
1 OB 베어스 40 29 0 11 0.0 0.725
2 삼성 라이온즈 40 26 0 14 3.0 0.650
3 MBC 청룡 40 22 0 18 7.0 0.550
4 해태 타이거즈 40 20 0 20 9.0 0.500
5 롯데 자이언츠 40 13 0 27 16.0 0.325
6 삼미 슈퍼스타즈 40 10 0 30 19.0 0.250
후기리그
1 삼성 라이온즈 40 28 0 12 0.0 0.700
2 OB 베어스 40 27 0 13 1.0 0.675
3 MBC 청룡 40 24 0 16 4.0 0.600
4 해태 타이거즈 40 18 0 22 10.0 0.450
4 롯데 자이언츠 40 18 0 22 10.0 0.450
6 삼미 슈퍼스타즈 40 5 0 35 23.0 0.125
통합승률
1 OB 베어스 80 56 0 24 0.0 0.700 구단 통산 첫 우승 V1
구단 통산 첫 한국시리즈 직행
구단 통산 최초 0.7+ 승률
KBO 역대 최초 0.65+ 승률
KBO 역대 최초 0.7+ 승률
2 삼성 라이온즈 80 54 0 26 2.0 0.675 구단 최초 0.65+ 승률
KBO 역대 2번째 0.65+ 승률
3 MBC 청룡 80 46 0 34 10.0 0.575
4 해태 타이거즈 80 38 0 42 18.0 0.475
5 롯데 자이언츠 80 31 0 49 25.0 0.388
6 삼미 슈퍼스타즈 80 15 0 65 41.0 0.188 단일 시즌 역대 최저 승률

원년 KS에는 비화 아닌 비화가 있다. 아래는 유명 야구기자였던 고 이종남 기자의 저서에 실린 내용이다.

전기리그 우승팀 OB 베어스는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 9월 29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박철순을 내보냈고,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무승부를 거두면 삼성의 남은 1경기 여부에 따라 결정) 후기리그 우승과 동시에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우승은 전, 후기 통합우승으로 OB의 몫이었다. 즉 OB는 이기기만 하면 1985년 통합우승을 이룬 삼성보다 먼저 통합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프로 첫 해부터 최대의 하이라이트인 한국 시리즈가 사라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껄끄럽게 생각하던 KBO의 난데없는 개입으로 이날 경기는 연장 12회 접전 끝에 2:1로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1:1로 맞서던 이날 경기에서 9회말이 종료된 시간은 밤 10시 30분으로 당시 규정상 연장전에 들어갈 수 없었고 삼성이 MBC를 이겨서 동률이 되지 않는한 OB의 전, 후기 통합우승이 결정될 상황이었지만 당시 경기 감독관으로 현장에 있던 이호헌 KBO 사무차장이 "밤 10시 30분 이후 연장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은 서울에만 국한되는 로컬 룰"이라는 말도 안되는 유권해석을 내세우며 탈법적(?)으로 연장에 돌입했고 그 결과 삼성이 이김으로써 최소 동률 1위를 확보해 두었고 그리고 마지막 MBC와의 경기도 이기면서 후기리그 단독 우승은 삼성이 차지했다.

하지만 이는 이종남 기자의 착각임이 확실한 게, 참고기사1참고기사2 당시 기사를 보면 서울시 정책 상 10시에 진행중인 이닝까지만 조명을 허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KBO 규정 상 시간제한 없는 15이닝 무승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적용된 로컬룰이 맞다.[27]

전, 후기리그의 순위는 1,2위가 서로 뒤바뀐 것을 제외하면 변화가 없었다. 다만 특이사항이라면 삼미가 후기리그에서 고작 5승을 거뒀다는 점 정도이다.

OB는 삼미에 16전 전승을 거두었다. 국가대표 출신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최약체 삼미는 OB전 전패를 당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역대 최악의 단일시즌 승률로 남아있는 .188이라는 처참한 승률을 남겼고, 그것도 후기리그에는 5승 35패로 승률이 .125에 불과했다. 결국 KBO는 1985년으로 예정해놓았던 해외동포 선수들에게 문호개방을 2년 앞당겨 그 다음해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7. 시즌 최종과 시즌 마감

7.1. 정규 시즌 기록 1위

이하 실제로 수상이 이루어지는 1위 타이틀은 굵게 표시한다.
순서는 '단일 시즌 기록' - '개인 통산 기록' - '개인 통산 O년 연속 기록' - '구단 통산 기록' - 'KBO 역대 기록' 순이다.
'구단 통산 기록'의 경우 타이틀 홀더 수상이 이뤄지는 부문에 한해 기록한다.
'피-'의 경우 -개, 그외의 기록은 '-홈런, -안타' 등으로 기재.
'윗첨자'의 경우 기록 달성자 인원수.
<rowcolor=#ffffff,#ffffff> 다음은 해당 기록을 달성 시 추가 작성.[28]
<rowcolor=#ffffff,#ffffff> 타자 수위타자 최다 안타 홈런 타점 득점 출루율 장타율 도루
0.350+
0.370+
180+
190+
40+
50+
120+
140+
100+
120+
0.450+
0.470+
0.600+
0.700+
50+, 60+
70+, 80+
<rowcolor=#ffffff,#ffffff> 투수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세이브 홀드 이닝
20+ 2.25↓, 2.00↓
1.5↓, 1.0↓
180+, 200+, 220+ 30+, 40+, 45+ 30+, 40+ 200+, 250+, 300+

7.1.1. 타자, 공격

<rowcolor=#ffffff,#ffffff> 타이틀 선수명 소속팀 기록 비고
<colbgcolor=#ffffff,#ffffff> 수위 타자 백인천 MBC 청룡 0.412 단일 시즌 최고 타율
개인 통산 첫 타율왕
구단 통산 첫 타율왕
KBO 역대 최초 0.350+ 타율
KBO 역대 최초 0.370+ 타율
KBO 역대 최초이자 유일한 0.4+
최다 안타 103안타 개인 통산 첫 최다 안타 1위
구단 통산 첫 최다 안타 1위
홈런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22홈런 개인 통산 첫 홈런왕
구단 통산 첫 홈런왕
타점 김성한 69타점 개인 통산 첫 타점왕
구단 통산 첫 타점왕
승리타점 양세종 OB 베어스 9타점 개인 통산 첫 승리타점왕
구단 통산 첫 승리타점왕
득점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55득점 개인 통산 첫 득점 1위
구단 통산 첫 득점 1위
백인천 MBC 청룡
출루율 백인천 MBC 청룡 0.497 개인 통산 첫 출루율왕
구단 통산 첫 출루율왕
KBO 역대 최초 0.450+ 출루율 2명
KBO 역대 최초 0.470+ 출루율
장타율 0.740 개인 통산 첫 장타율 1위
구단 통산 첫 장타율 1위
KBO 역대 최초 0.600+ 장타율 2명
KBO 역대 최초 0.700+ 장타율
도루 김일권 해태 타이거즈 53도루 개인 통산 첫 도루왕
구단 통산 첫 도루왕
KBO 역대 최초 50+ 도루
사사구 정학수 롯데 자이언츠 59개 볼넷 53개 + 몸에 맞는 공 6개
몸에 맞는 공 김인식 MBC 청룡 18개
피삼진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55개
병살타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13개

7.1.2. 투수, 수비

<rowcolor=#ffffff,#ffffff> 타이틀 선수명 소속팀 기록 비고
<colbgcolor=#ffffff,#ffffff> 다승 박철순 OB 베어스 24승 개인 통산 첫 트리플 크라운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개인 통산 첫 다승왕
구단 통산 첫 다승왕
KBO 역대 최초 20승 투수
평균자책점 1.84 개인 통산 첫 방어율왕
구단 통산 첫 방어율왕
KBO 역대 최초 2.0 이하 방어율
KBO 역대 최초 2.25 이하 방어율
승률 0.857 시즌 24승 4패
개인 통산 첫 승률왕
구단 통산 첫 승률왕
탈삼진 노상수 롯데 자이언츠 141K 개인 통산 첫 탈삼진 1위
구단 통산 첫 탈삼진 1위
구원 황규봉 삼성 라이온즈 19포인트 개인 통산 첫 구원왕[29]
구단 통산 첫 구원왕
세이브 11세이브 개인 통산 첫 세이브 1위
구단 통산 첫 세이브 1위
이닝 노상수 롯데 자이언츠 232⅓이닝 KBO 역대 최초 200+ 이닝 3명
등판 김재현 삼미 슈퍼스타즈 47경기
황규봉 삼성 라이온즈
피홈런 감사용 삼미 슈퍼스타즈 25개
피안타 김재현 삼미 슈퍼스타즈 268개
사사구 허용 인호봉 삼미 슈퍼스타즈 115개 볼넷 96개 + 몸에 맞는 공 19개
몸에 맞는 공 허용
패전 김재현 삼미 슈퍼스타즈 19패
노상수 롯데 자이언츠
야수 실책 유지훤 OB 베어스 25개
투수 폭투 김재현 삼미 슈퍼스타즈 6개
하기룡 MBC 청룡
이광권
이상윤 해태 타이거즈

8. 포스트시즌

19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전기 1위 OB 베어스와 후기 1위 삼성 라이온즈간에 한국시리즈가 열렸다. 자세한 내용은 1982년 한국시리즈 문서 참조. 프로야구 원년의 패권은 OB 베어스가 잡았다. 특히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OB의 김유동이 개막전의 만루홈런을 맞은 이선희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하며[30] 원년을 화려하게 마무리지었다.[31]

9. 구단별 시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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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별 198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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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롯데 자이언츠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1982년
삼성 라이온즈
1982년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pn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해태 타이거즈
1982년
MBC 청룡
1982년
OB 베어스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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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하기룡이 선발로 나올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복통 때문에 이길환이 대체로 나섰다.[2]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도 KBO 리그 사상 유일한 '개막전 끝내기 만루포.'[3] 69타점으로 타점 1위까지 먹었다.[4]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임호균과 김진우가 세계선수권 때문에 프로 입단이 1년 늦춰진 상태였고, 팀내 좌완투수가 없어서 계열사(삼미특수강) 직장야구팀에서 뛰던 감사용(실업팀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뿐 엄연히 전문 선수였다.)을 영입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고교 시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는 이하룡을 훈련 태도 불성실을 이유로 시즌 개막 전에 내쫓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5] 80년대 초반 KBS 고교야구 중계에서는 여자 아나운서가 타자의 신상명세와 당일 성적을 읊어주었는데, 여기서 착안해서 원년 프로야구 개막전에도 같은 시스템을 도입했다.[6] 공교롭게 KBS 중계에 나선 두 아나운서 모두 1년 4개월 전에 통폐합된 동양방송 출신이었다.[7] 개막행사 중계 - 캐스터 : 이세진 | 해설위원 : 하일성[8] 이날 시구 플레이볼 콜을 한 심판은 김광철 심판이었는데 원래는 심판번호 1번이던 김옥경 심판이 개막전 구심으로 배정된 상태였으나 다음과 같은 사연으로 인해 빠졌다. 김옥경 심판은 개막전을 며칠 앞두고 지인들과 술을 먹다가 술김에 "내가 개막전 구심인데 그날 시구를 대통령이 한다"라는 말을 발설했고 이것을 들은 기관원들이 김 심판을 끌고 가 심문했다는 썰이 전해진다. 지금도 대통령의 동선을 사전에 누출하는 것은 코로 설렁탕을 흡입할 일인데 서슬퍼런 당시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김옥경 심판이 빠지고 심판번호 2번이던 김광철 심판이 개막전 구심으로 마스크를 썼다고 전해진다.[9] 당시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첫 홈런을 친 이만수에게 최고급 피아노를 선물로 줬다고 한다.[10] 하도 극적이고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끝내기 홈런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에 의해 이장우 캐스터도 덩달아 흥분하여 스코어를 잠시 헷갈렸던 모양이다.[11] 원래는 5월 12일부터 야간 경기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우천으로 2차례나 야간 경기가 취소되면서 5월 20일 삼성 vs 삼미 전이 KBO의 공식적인 첫 야간 경기로 진행되었다.[12] KBS 1TV, KBS 2TV, MBC TV[13] KBS 제1라디오(지역 중계 한정), KBS 제2라디오, MBC 라디오[14] 심지어 한국시리즈에서도 MBC 담당 경기는 경기 시작 1시간 여가 지난 후에야 중계가 시작되었다.[우취] [우취] [우취] [18] KBO 리그의 공식적인 첫 야간 경기. 그 전에 5월 12일 해태 vs OB 전과 5월 19일 삼미 vs MBC 전이 야간 경기로 배정되었으나, 두 경기 모두 우천 취소되면서 이 경기가 최초의 정식 야간 경기가 되었다.[DH1] [우취] [우취] [우취] [우취] [우취] [우취] [우취] [27] 1982년 한국시리즈참고[28] 다만 '투수-이닝'의 경우 타이틀홀더 대상이 아님.[29] 8승 + 11세이브[30] 이 때문에 한동안 "만루홈런으로 동터서 만루홈런으로 해 저물었다"란 유행어가 떠돌았다.[31] 사실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한국시리즈가 끝난 이후 삼성과 MBC가 정규시즌 최종전을 치렀기 때문. 참고로 여기서도 MBC는 개막전과 같이 최정기대타 끝내기 홈런으로 MBC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