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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Book of Judges
한자(한국어) 判官記 · 士師記
중국어 民長紀
일본어 士師記 (ししき)
기본 정보
전승되는 저자 사무엘
기록 연대 B.C. 8세기 ~ 6세기(신명기계 역사서)[1]
1000년경(전통적 견해)
분량 21장
주요 인물 이스라엘의 판관들

1. 개요2. 설명3. 연대4. 대략적인 내용
4.1. 패턴의 반복성4.2. 혼란상
5. 판관기와 왕정6. 성경에 기록된 판관 목록
6.1. 판관기6.2. 사무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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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러나 그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 앞에 절하며 섬겼는데, 그 하는 짓이 조상들보다도 더 나빴다. 굽힐 줄 모르고 못된 길로만 가는 버릇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판관기 2장 19절 (공동번역 성서)
그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였다.
판관기 21장 25절[2] (공동번역 성서)

구약성경의 7번째 권.

개역 성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신교 성경이나 일본어에서는 '사사기'라고 번역되어 있다. 중화권 가톨릭에서는 '민장기'로 번역되어 있다.

2. 설명

판관기에 나오는 판관(사사)(שופט(쇼페트), Κριτές, Iudex)들은 하느님에게 사명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을 이민족의 침입에서 구해내는 역할을 하고 평화 시기에는 최고 재판장의 역할을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대체로 이스라엘 12가문 전체보다는 한두 가문에 한정되어 있었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정복 이후 일어난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당시 이스라엘이 이집트 탈출 당시 함께 빠져나온 가문들과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흡수 병합된 일부 토착 종족들로 구성된 연맹 국가 체제였을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며, 각 개별 가문들 혹은 몇 개의 가문이 연합해서 이민족들과 투쟁했던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판관기의 내용으로 정착한 것으로 역사학계의 정설이었다.[3]

성서비평학계에서는 과거 이 작품이 예후드, 야엘, 기드온 등의 영웅들의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후대에 소위 '구원의 서'라고 불리는 민담 모음집에 수록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야훼의 전쟁'이라는 신학적인 주제를 부여받았고, 최종적으로 바빌론 유수 이후 신명기계 사서들이 편집한 것으로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여호수아의 죽음과 야훼와의 접촉을 이야기하는 1:1-2 등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17-21장은 전후 사서들과의 연관성을 위해 추가된 부분으로 여겨졌다.[4]

하지만 21세기 이후 비평학계의 견해는 다소 다르다. 최근 비평학계에서는 보수적인 학자와 자유주의적인 학자를 막론하고 판관기 전체가 내용에 통일성이 있고 한 명의 저자를 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고고학적으로 성서 반영에 있어서 최소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이스라엘 핀켈스타인은 판관기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시절에 국가 주도로 자료가 수집되었으며 왕가의 기원을 판관기와 사무엘기에 반복적으로 전투에 대한 전승이 나오는 이즈르엘 계곡으로 설정함으로서 정통성과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3. 연대

저자는 탈무드의 전승과 초대교회의 전승에 따라 예언자 사무엘로 알려져 있다.[5] 그러나 성서비평학에 따르면 사사기는 최초의 신명기계 문헌(Dtr)으로 분류되며, 사사기라는 구체적인 두루마리 책으로 구성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7세기 후반(요시야 시대)~6세기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이후 21세기의 추가 연구 자료를 반영한 성서비평학 관련 논문 중에는, 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 구전과 필사로 전해지던 파편적인 데이터[6]가 재정리되어 요시야 시대에 사사기의 첫번째 판본이 만들어지고(Dtr1), 6세기에 내용이 증보되어 지금의 사사기가 만들어졌다(Dtr2)는 이론도 제기되고 있다.

4. 대략적인 내용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뒤 농경 민족으로 전환되면서 일어난 종교상의 문제와 이민족들의 침입, 그리고 이민족의 침입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판관(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마음에 하느님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난장판에 빠지고, 이를 교정하기 위해 여러 판관(사사)들이 세워졌으나, 판관(사사)이 떠나면 다시 혼란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결국 나중에는 가장 뛰어난 판관이자 나실인이었던 삼손이 블레셋에 현혹되어 힘을 잃고 타락하며,[7] 판관 자리는 엘리-사무엘 라인에 이르는 대제사장 겸 판관 직책으로 간신히 유지된다.

삼손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이 없으므로 그저 제멋대로 행동하여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황당한 사건들이 이어지다, 결국 이스라엘에 진정한 왕이 없으므로 인생이 제멋대로 행동하던 시대였다는 구절로 마무리된다.

4.1. 패턴의 반복성

판관기를 쭉 읽어보면 일정한 패턴이 사이클을 이뤄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를 섬기지 않고 다른 민족의 신[8]을 섬긴다.→ 2. 이에 대한 신벌로 이웃 나라 중 하나가 선택되어 이스라엘을 지배한다. → 3. 이스라엘 민족이 지배국의 압제에 시달리며 야훼께 살려달라고 징징거린다. → 4. 야훼에 의해 민족을 구원할 지도자인 판관이 선택되고, 야훼의 이름으로 지배국을 물리치고 자유를 얻는다. → 5. 판관이 죽는다. → 1번으로 무한반복 사이클. 단, 막장 정도가 윗세대보다 더 심해진다.
이 사이클은 당장 판관기 내내, 정확하게는 여호수아 사후부터 사울이 이스라엘 왕국 최초의 국왕이 되기까지의 400여 년 동안 7번 반복된다. 그리고 왕정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다가 바빌론 유수로 이어지고, 또 바빌론에서 돌아와 다시 이스라엘을 재건하고서도 말라기가 쓰여질 정도로 타락해 예수가 활동하는 시기까지의 긴 침묵 시대를 유발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구약 성서 전체가 판관기 이후로 계속 이 사이클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처럼 전개됨을 알 수 있으며, 판관기는 그 장대한 삽질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9]

물론 이를 역사적으로 해석해보면 달리 볼 수 있다. 히브리인들이 당시 사는 가나안 땅은 블레셋, 에돔, 암몬, 모압, 아말렉, 아람 등 여러 민족들이 주변에 먼저 자리잡고 있었고 갓 이주해온 히브리인들이 이보다 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10] 더군다나 저렇게나 많은 민족이 자리잡고 있으며 또 그걸 탁 트인 땅에서 맞닥뜨리고 있으니 서로간에 교류 같은 것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판관기의 패턴의 반복성은 상대적으로 약한 민족이 주변민족의 끊임없는 침공과 격퇴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이방신들도 들어온 것이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4.2. 혼란상

초중반부에는 입다[11] 사사들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그 유명한 삼손 이후에는 별 막장스러운 이야기가 다 나온다. 3년마다 전례력에 맞춰서 성경을 배치하는 성서 정과를 만들 때 사제나 목회자들을 가장 고민에 빠뜨린 구약 성경이라고 한다. 너무 폭력적이어서 이걸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구약 성경 상당수가 현대 기준으로 아스트랄한 내용이 많지만, 판관기는 그 막장도가 상당히 심하고 한 사이클이 돌아갈 때마다 정도가 더해진다.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인과 하느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던 모세여호수아는 한참 전에 죽은 데다, 가나안 땅에 뿌리를 내릴 때 이방인들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그들과 섞이면서 이방인의 종교를 받아들여 타락하게 되는 것이 주요 내용.

17장에는 미가[12]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13]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지금 관점에서 보면 영락없는 성직 매매와 제대로 된 기복신앙의 정수이며, 여기에 연관된 사람을 스카웃해 가는 단 지파 역시 똑같은 일을 벌인다.

19장부터는 더 막장스러운 사건이 나오는데, 어떤 레위 사람이 여행을 가다가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서 성노리개를 요구하는[14] 자들에게 [15]을 밀어내버리고[16] 이 하룻밤 동안 집단 윤간을 당하고 다음 날 새벽 아침에 죽자 복수해야 된다면서 이스라엘 전 민족에게 의 시체를 열두 토막을 내어 보낸다.[17] 이 사건 덕분에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베냐민 지파가 멸망할 뻔했다. 각 뜬 시체가 각 지파에게 배송되면서 나머지 11지파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사건의 주동자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지만,[18] 베냐민 지파가 오히려 이들을 옹호하면서 내전이 터졌다. 처음에는 베냐민 지파가 잘 싸우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털려버린다.[19] 이때 겨우 사막으로 도망친 600명의 남자를 빼고 모든 베냐민 지파가 전멸했다. 어쩌면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나라가 두개로 쪼개질 때 베냐민 지파가 유일하게 유대 지파 이외에 남왕국에 잔존했음에도 존재감이 공기 수준인건 이 때문일지도. [20]

이 전쟁 이후로 다른 지파들이 우리는 절대 베냐민 지파에게 딸들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이런 일을 당해야 했습니까? 어찌하여 오늘 이스라엘에서 지파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까?"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런데 살아남은 베냐민 족속 남자들에게 결혼시킬 여자는 구해야겠고 맹세는 했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이 기발한 대책을 내놓는데, 그 대책이 참으로 해괴망측했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서 병력을 보내오지 않은 족속이 누군가를 체크하다가 딱 걸린 게 야베스 길르앗 족속이었고 이에 병력을 야베스 길르앗으로 파견해서 처녀인 사람만 빼고 어린아이까지 다 죽였다. 이렇게 처녀 400명을 확보하지만 나머지 200명은 어떻게 조달할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납치.[21] 그래서 남은 200명의 베냐민 남자들에게 "해마다 실로에서 하느님의 축제가 열릴 때 춤추는 아가씨들이 나오면 포도밭에 숨어있다가 1명씩 납치해서 데려가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베냐민 지파는 대가 끊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슬람 72명 처녀를 욕할 일이 아니다.=[22]

판관기에는 타 민족과의 전쟁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타 민족에 대한 약탈, 방화 기록은 여호수아서와는 달리 대부분 이스라엘이 타 민족에게 두들겨 맞다가 봉기해서 그들을 쫓아내는 과정의 반복이므로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존재한다. 기드온의 경우, 자신의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타 민족의 왕의 물건을 약탈하고 어린 아들에게 그 타 민족의 왕을 죽여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단 이는 당시의 시대적 & 문화적 개념에 대해 이해한 상태에서 접근해야 한다. 고대 근동뿐 아니라 몽골 등 다른 유목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의 하나로 이들은 살해당한 혈족에 대해서는 반드시 복수를 가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당시의 도덕률이었다.[23] 유목민 사회는 혈족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정착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목민적 관습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기드온이 어린 아들을 시켜 적장들을 죽이는 것은 복수이자 최후의 모욕인 셈이다. 그 기드온조차도 사후 자신의 수많은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을 맞이한다.

5. 판관기와 왕정

판관기의 시대는 신정 체제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왕정으로 이행하기 전의 과도기적인 시대이다. 판관기의 말미에 부록 형식으로 수록된 부분에서는 갖가지 혼란상[24] 등 수많은 막장사건들을 소개하면서 왕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판관기에서는 왕정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병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왕정에 대한 상충된 입장이 나타나는 것은 판관기가 여러 편집자의 손을 거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왕권을 위한 변론'(19,1-30)은, 사울의 기브아와 결부된 북이스라엘의 왕권을 거부하는 반면, 손님을 극진히 접대하는 성읍 베들레헴 출신인 다윗 왕가의 지배는 옹호한다. 판관기의 dtr[25] 신학은 유배 중에 꼴지어졌는데, 실패한 왕정의 더 나은 대안을 구원자적 인물들 안에서 본다. dtr 이후nachdtr 시기에 왕정의 속행에 대한 희망이 다시 살아난다. 왕이 없던 시대는 이제 이기적 전횡의 시기로 간주된다(17,6; 18,1; 19,1; 21,25).
에리히 쳉어, 『구약성경 개론』,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2012), p.382-383.

6. 성경에 기록된 판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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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멜렉)
돌라 야이르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엘리[사무엘기] 사무엘[사무엘기]
통일 이스라엘 · 북이스라엘
남유다 · 바빌론 예후드 · 예후드 메디나타
하스몬 왕조 · 헤로데 왕조 · 유다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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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의 재위기간과 이민족 지배기간.출처

다만 엘리의 통치가 끝나는 때가 기원전 1024년으로 되어 있는데, 사울 왕의 즉위년도로 추정되는 시기가 기원전 1047년 ~ 1030년 내외이다. 위 자료는 삼손의 통치가 끝나고 엘리가 40년동안 다스린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이와 관련해 여러 성서비평학자들이 다른 고대국가의 문서 데이터와 교차검증을 시도했는데, 여러 이견이 대립되긴 하지만 대체로 삼손 말기와 엘리 초기가 어느 정도 겹치는 게 아닌가 하는 쪽으로 가설이 모아지는 듯하다.

6.1. 판관기

6.2. 사무엘기

사울에 의해 왕정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사무엘기에 기록된 판관들은 아래의 2명.


[1] 보다 최근의 성서비평학적 견해. 사사기 5:2~31의 데보라의 노래 구절은 무려 기원전 12세기(!)까지 올라간다. 신명기계 문헌 최초의 기록이란게 다수설.[2] 17장 6절에 처음 등장하여 이후 21장까지 반복되는 구절이며 판관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판관(사사) 시대의 총평을 장식하는 구절로써, 하느님의 질서가 사라졌기에 인생이 벌이는 황당한 일들에 대해 뼈저리도록 통렬하게 고찰한다. 성경 내에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구절이 많지만, 17장~21장의 판관기는 아예 대놓고 전후인과 관계와 책임관계가 전혀 파악되지 않는 해괴한 서술로 가득하다. 그나마 이를 노골적으로 번역한 다른 번역 판본과 달리, 개역한글/개정 판본에서는 괴악한 문장으로 돌려 서술하여 오히려 그 혼란함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3] 활동 시대가 겹치는 사사가 4명 있는데, 드보라와 삼갈이 겹치고 입다와 삼손이 겹친다.[4]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성서비평학계의 성경 모순점 지적이 바로 판관기 1장에 나오는 땅 관련 서술이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근동~중동 지역의 지리학 및 고대 종교학에 관련된 사전 지식이 필요하므로, 나무위키의 문서관리 지침에 적절하지 않아 풀어서 기록하지는 않는다.[5] 그 시절엔 왕이 없었다는 구절을 보아 이스라엘 왕국 창건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며, 여부스 성(예루살렘) 이 아직 이스라엘 수중에 있지 않다는 서술을 보아 사울왕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여부스 성의 공략은 다윗왕의 업적이기 때문.[6] 그 기원이 기원전 8세기까지도 올라가는데 특히 5:2-31의 데보라의 노래 구절은 기원전 7세기에 다수설에 따르면 기원전 12세기(!)까지도 올라가는 물건일 정도로 오래되었다.[7] 정확히 말해서 삼손이 하느님을 배반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블레셋인 여인의 유혹에 힘을 잃고 노예 신세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힘으로 블레셋인 수천명과 함께 사망한다. 평이 낮은 판관이지만 성경에서는 그도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8] 대체로 바알, 아세라, 아스타로트가 거론된다.[9] 근데 사실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조상들도 판관기처럼 별 차이 없는 오십보 백보이다. 공통점은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 말 안듣다가 혼쭐나고, 이에 도와달라고 징징대자 야훼가 도와주다 또 잠잠하면 백성들이 또 말썽부리다 또 혼나는 등의 내용 투성이다. 특히 열왕기에서 툭하면 언급되는 '여로보암의 길'은 금송아지 숭배를 말하는데 이 금송아지 숭배도 출애굽기에서 처음 나온다. 그 때는 모세에 의해 즉시 없어지기는 했지만 금송아지를 야훼라고 숭배하게 한 것은 북이스라엘과 똑같다.[10] 반대로 왕정 수립 후 다윗 시대 이후로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 및 분열 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오히려 타민족을 정복했다가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는데 400여년간의 시간동안 이스라엘의 국력이 커지면서 이스라엘도 주변국의 침략을 막아낼 수준을 넘어 단기간 복속이 가능할 정도에 이르렀고 또한 한두 가문 수준에만 영향력이 있는 판관을 넘어 전체 가문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왕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단 성경에서 왕들은 적어도 판관들만큼 자기가 소속된 가문 외의 다른 가문에게 쩔쩔매진 않는다. 기껏해야 르호보암이 10지파의 반발을 맞고 영토 절반이 독립하는 정도.[11] 후일 언어의 차이성으로 사람을 가려내거나 학살로 이어지는 수법인 십볼렛이 여기서 유래한다.[12]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주님와 같은 자가 있습니까?"으로 좋은 이름이다. 즉, 주님과 같은 자가 없다고 하는 일종의 질문 겸 선언형 이름이지만, 미가는 그 이름대로 살지 못했다.[13] 선지자 미가랑은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선지자 미가는 남유다 히스기야 왕 시대 사람이며, 예레미야서에도 언급된다.[14] 이때 묘사가 영락없이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 사람들과 똑같다. 결과는 반대지만.[15] 레위 지파 사람은 누구보다 야훼를 가까이하는 제사장을 담당했다. 원래라면 첩을 둬서는 안 되는데 첩을 삼은 것부터가 판관기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16]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이 레위인의 행동은 비열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악으로 큰 악을 방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집주인은 자기 집에 든 손님에게 음식과 잠자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변까지 보호해야 한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 조직이나 사법 체계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던 당시, 자칫 적대적일 수 있는 집단들이 흩어져 살던 상황에서, 종교와 씨족을 뛰어넘는 이러한 의무는 인간 세상을 받쳐 주는 기본적인 덕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집주인은 딸을 내놓음으로써, 이 지고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이때에 손님이 나서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할 경우에 집주인은 오히려 치명적인 명예 훼손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 레위인은 집주인 딸을 보호할뿐더러 손님 접대 법의 위반을 막고 집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자기 소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실에 대한 집단 강간이, 용납될 수 있는 작은 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그 여자는 윤간의 결과로 목숨을 잃는다(28절). 이것 역시 피로써 보복되고 속죄되어야 하는 커다란 죄악이다(29-30절; 20,4-7 참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 성경[17] 이 처참한 광경을 본 사람들이 놀라서 말하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래로 이런 끔찍한 광경을 본 건 처음이다. 이를 논의한 후에 알리기로 하자고 말할 정도로 심각성을 인지했다.[18] 너희 중에 생긴 이 범행이 성폭력이냐?? 그러면 너희가 불량배를 넘겨주면 우리도 너희를 처벌하지 않겠다.[19] 2만 6천명 가량의 베냐민 군대와 40만 명의 나머지 11지파 군대의 숫적 격차는 당연히 1:10을 훌쩍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베냐민 지파 군대에는 돌팔매질(그 당시에 돌팔매병은 엄연히 병과 중 하나로, 수백 년 지난 인물인 다윗도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다)로 머리카락도 맞힐 수 있는 정예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성경에서야 '인간의 잘못과 신의 권능'을 강조해야 하니 "신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싸웠다가 계속 패했으나 나중에 정신 차리고 이겼다"라고 서술했겠지만, 사실은 베냐민 군대가 질적으로 굉장히 강한 정예군이라 고전을 면치 못한 듯하다.[20]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초대 왕 사울의 지파가 베냐민이니 사울의 재위 기간에는 그래도 어느정도 회복세를 찾았겠지만, 하필 사울의 뒤를 잇는 다윗이 사울에게 숙청당할 뻔했으니 다윗 왕가에서 요나단의 직속을 제외한 베냐민 지파를 잘 대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성서에도 사울 일가가 망한 후 베냐민 지파의 수장이 된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솔로몬에게 살해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21] 딸들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거니 강제로 뺏어오는건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다.[22] 로마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가 사비니족 여인들을 축제 기간에 납치해 로마인들의 아내로 주었다는 로마 신화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을 보면 당시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지도.[23] 그러나 여전히 현대에도 제 3세계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세대에 걸친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단지 서구 유럽이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서구 유럽식 윤리관에 따라 2000년 대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반대로 아직 그들이 단순히 다른 시간축에서 살고 있으니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당장 '왕은 왕을 죽여서는 안된다'라는 얘기가 등장하는 것만 해도 동양에서는 주나라 유왕이나 초나라 회왕 시절부터이므로 단순히 "고대사회니까 정당하다"라는 논리는 고대든 현대든 어느 쪽으로든 말이 맞지 않고, 혈족우선주의가 유목사회만의 특징인 것도 아니므로, 다분히 특정 민족문화에만 한정된 논리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이야기다.[24] 어느 마을에 사는 사람이 어머니의 을 훔쳤다가 어머니가 저주를 퍼붓자 사실 자기가 훔쳤던 거라며 을 내놓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뻐하며 말을 바꿔서 아들을 축복하며 은으로 신상을 만들어 주어서 이것을 사당에 모시고 자기 마음대로 사제를 세운다. 그 밖에도 위에서 서술한 미트스핀 사건 같은 막장 사건들이 나온다.[25] 신명기계 편집[26] 특이하게도 모압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룻기의 주인공인 룻에 대해서 탈무드에서는 룻의 아버지가 에글론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룻이 모압인 출신이라 그런 모양인데 하지만 오드니엘의 활동기와 에훗의 활동기 사이의 공백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룻이 판관기 기준으로 보면 후반기 즈음의 사람으로 그녀는 다윗왕의 증조모다.[27] 이때 에글론의 경호병들이 에훗의 몸수색을 했으나 왼손잡이인 에훗이 오른쪽 허벅지에 검을 묶어두었는데 이 부분을 놓치고 들여보냈다.[28]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는 알 수 없어도 일단 무기 하나로 수백명을 쳐죽이는 것이 가능은 하다. 임진왜란 시기에 살았던 명회라는 한 농민은 편곤 하나로 왜군 400명을 쳐죽여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남았다.[29] 왕을 칭했으나 기록상 판관(사사)은 아니다.[30] 올리브나무는 자신이 내는 기름 때문에, 무화과나무는 자신이 맺는 열매 때문에, 포도나무는 열매로 만든 술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 거절하였다.[31] 이 우화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은, "키도 작고 볼품 없는 가시나무가 우쭐한다(=자질도 없는 아비멜렉이 자만한다)"이다.
다만 현대에는 성서식물학의 발달로 대안 해석이 제기되었는데, 이 해석에선 이 우화의 '가시나무'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작은 가시나무가 아니라 Ziziphus Spina-Christi라는 학명의 키 큰 (10m 이상) 가시나무로 본다. 이 나무는 당대에 이집트의 아문-레를 상징하였다. 즉 요탐은 이 우화에서 가시나무를 통해 파라오를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요탐의 우화는 이런 의미다: "왕정? 이집트 놈들이나 할 법한 발상이로다"
[32] 생물학적으로 한 여성의 몸에서 아들딸 도합 60명이 나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축첩이 예사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33] 결국 엘리의 현손인 아비아달을 끝으로 그의 후손들은 다시는 대제사장을 맡지 못한다. 그마저도 아비아달 전대에도 사울왕에 의해 일족이 학살당하는 등 안좋은 일이 있었으며 이후 엘리의 후손들의 수난은 끝나지 않아서 예레미야 역시도 개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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