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633><colcolor=#fff> 파벨 폰 렌넨캄프 Па́вел Ренненка́мпф Paul von Rennenkampf | ||
<nopad> 파일:1000097110.jpg | ||
이름 | 파벨 카를로비치 렌넨캄프 Па́вел Ка́рлович Ренненка́мпф Pavel Karlovich Rennenkampf | |
출생 | 1854년 4월 17일 | |
러시아 제국 예스틀란트현 코노페르 | ||
사망 | 1918년 4월 1일 (향년 63세) | |
러시아 SFSR 타간로크 | ||
복무 | 러시아 제국 육군 | |
복무 기간 | 1870년 ~ 1915년 | |
최종 계급 | 기병대장 | |
주요 참전 | 의화단 운동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 |
주요 서훈 | 성 게오르기 훈장 3, 4등급 성 블라디미르 훈장 2, 3, 4등급 성녀 안 훈장 1, 2, 3급 성 스타니슬라프 훈장 1, 2, 3등급 |
1. 개요
러시아 제국의 군인. '파울 폰 렌넨캄프'로도 불린다.2. 생애
1859년 예스틀란트현 코노페르에서 발트 독일인 귀족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계 학교를 졸업하고 제89보병연대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헬싱키에 있던 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제5창기병연대에서 복무하다가 니콜라이보통참모학교를 수료하고 제14군단에서 복무했다. 1886년 바르샤바 군관구 참모장을 지내고 제2군단본부, 러시아령 폴란드에 있던 오소비치 요새 참모장을 지냈다.1899년 소장으로 진급하고 의화단 전쟁 당시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워 공을 세웠다. 이후 다게스탄, 만주를 오가며 복무했으며 러일전쟁 당시 캅카스 사단장을 지냈고 중장으로 진급했다. 봉천 전투 당시 니콜라이 리네비치 휘하 좌군으로 전투를 치렀다. 이 당시 알렉산드르 삼소노프와 만났고 봉천 전투의 책임으로 결투까지 벌여졌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당시 강경하게 진압했으며 1910년 기병대장으로 진급했다. 1913년 빌나 군관구 사령관을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1군사령관으로 제2군을 이끄는 삼소노프와 오스트프로이센으로 진군했다. 보급문제로 인해 마주리안 호수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독일은 1개 기병사단으로 1군을 묶고 삼소노프의 2군을 포위섬멸했다. 삼소노프는 지원요청을 했으나 묵살당하고 결국 패배 후 권총자살했다. 이후 폰 렌넨캄프의 1군은 퇴각했다. 결국 책임지고 제1군사령관에서 해임되고 예편했다. 이것이 타넨베르크 전투(1914)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도주하던 중 타간로크에서 체포되어 총살형되었다.